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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B 양적완화 ‘양날의 칼’…EU 경기회복 계기 vs 글로벌 환율전쟁 심화
뉴스종합| 2015-01-23 09:35
[헤럴드경제=이해준 선임기자]“유로존 경기회복의 계기가 될 것인가, 새로운 글로벌 환율전쟁의 기폭제가 될 것인가.”

유럽중앙은행(ECB)이 오는 3월부터 내년 9월까지 총 1조1400억유로 규모의 유동성을 시중에 공급하는 양적완화에 나서기로 하면서 이것이 미칠 세계와 한국경제 영향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는 가운데 기대와 우려의 목소리가 동시에 나오고 있다.

한편에서는 경기침체와 물가하락이 동시에 진행되는 디플레이션의 늪에 빠진 유로존 경제를 구출하는 마중물 역할을 할 것이란 긍정적인 평가가 나오고 있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서는 유로화 약세를 가속화하면서 글로벌 환율전쟁을 유발하고, 향후 미국의 금리인상과 맞물려 글로벌 금융시장의 변동성을 확대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특히 양적 완화를 통한 경기진작 효과는 서서히 나타날 수밖에 없는 반면, 글로벌 자산이동은 신속하게 이루어지면서 불확실성이 높아질 것이란 우려가 많다.



▶시장은 긍정적 반응, 변동성은 증대=ECB는 22일(현지시간) 통화정책위원회에서 오는 3월부터 최소한 내년 9월까지 국채 매입 등을 통해 매월 600억유로씩 총 1조1400억유로를 공급하는 양적 완화를 단행하고, 금리는 사실상 ‘제로금리’를 유지하기로 했다.

이번 이번 ECB의 양적완화는 유로존의 경제 불황을 타개하기 위한 고육책으로 이미 예상됐던 조치지만, ‘양날의 칼’을 갖고 있다. 유로존의 경제활성화 대책이면서, 동시에 자국의 경제난을 외부로 전가하는 전형적인 ‘불황수출’ 조치이기 때문이다.

이번 조치에 시장은 일단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최소한 500억유로 이상, 최대 1조유로 이상을 예상했던 시장의 기대에 부합했다는 평가 때문이다. 양적완화 조치가 이뤄진 22일 유럽과 미국 증시의 주가는 일제히 1% 이상 오르면서 이 조치를 환영했다.

하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마이너스 물가에 접어들기 시작한 유로존을 디플레이션의 늪에서 구하고 경기회복의 계기가 될 조치라는 평가와 함께, 이것이 만병통치약이 될 수는 없다며 개혁이 동시에 진행돼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다보스포럼에 참석 중인 크리스틴 라가르드 IMF(국제통화기금) 총재는 “ECB의 강력한 조치로 유로존이 차입비용을 절감해 투자를 활성화하고 디플레이션 우려를 줄이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것으로 기대한다”며 환영했다. 존 크리들랜드 영국 산업연맹(CBI) 사무총장은 “유로존에는 경제회복의 계기가 될 것”이라며 “경제 효과를 높이려면 구조개혁이 동반돼야 한다”고 밝혔다.

반면 유럽경제의 버팀목 역할을 해온 독일을 중심으로 회의론이 나오고 있다. 유동성 공급이라는 극약 처방에 매달려 구조개혁을 미룰 경우 오히려 경제에 독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경기회복 효과를 내려면 시간도 많이 걸린다. 실제로 일본은 10년 이상의 양적 완화에도 불구하고 경제를 플러스 궤도에 올려놓지 못하고 있고, 미국도 6~7년의 양적완화를 통해 반전의 계기를 만들었다.

독일 은행연합회의 미카엘 케머 회장은 “양적완화 효과는 제한적이지만 자산 거품 확대와 금융 리스크가 커질 위험도 높아졌다”고 경고했다. 양적완화에 부정적 입장을 보였던 메르켈 독일 총리는 개혁을 주문했고, 지그마르 가브리엘 부총리 겸 경제장관도 “과거 독일의 경제개혁 노력은 8년 뒤에야 결실이 나타났다”며 “개혁을 통한 성장 정책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문제는 양적완화에 따른 유로화 약세가 일본의 양적완화와 맞물리며 글로벌 환율전쟁으로 비화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날 달러/유로 환율이 장중 유로당 1.1404달러로 2003년 11월 이후 11년 만에 최저수준으로 떨어져 환율전쟁을 예고했다.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FT)는 23일 유로화 움직임을 전하면서 환율 전쟁 재연 가능성이 커졌다고 경고했다.

LG경제연구원의 이지평 선임연구위원은 “이번 양적완화로 유럽의 물가하락을 막고 수요를 진작하는 효과가 기대된다”면서 “하지만 이로 인한 유로화 약세가 일본 엔화 약세와 맞물릴 경우 환율전쟁이 재연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 연구위원은 “다만, 미국이 금리를 올리면서 달러 강세가 나타나고 있어 과거와 같은 환율전쟁을 막는 안전판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한국경제에는 어떤 영향 미칠까=글로벌 경제에 ‘양날의 칼’을 갖고 있는 것처럼 한국 경제에도 ‘양날의 칼’이다.

정부는 이번 ECB의 양적완화가 유럽의 경기회복을 이끌어내 한국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란 긍정적인 입장을 보이면서도 글로벌 유동성과 환율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특히 신흥국에서의 자본이탈 우려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2일 인천 송도를 방문한 자리에서 “ECB의 양적완화로 유로존의 성장률이 촉진되고 디플레이션 우려가 낮아지면 세계 경제에 전반적으로 도움이 될 것”이라며 “다만 금융시장 변동성이 커지는 부분에 대해서는 경계하고 리스크를 관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나라는 오래전부터 신흥국과 차별화된 움직임을 보여왔기 때문에 자본유출을 걱정할 상황이 아니다”며 “만에 하나 일어날 수 있는 자본유출 가능성에 대비해 관련 규정을 정비하겠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글로벌 환율전쟁이 벌어지더라도 유로화와 엔화가 동시에 약세를 보이고 달러가 강세를 보일 경우 원화 가치 상승을 완화하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이 과정에서 금융시장의 변동성과 불확실성이 커질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유로화 약세는 글로벌 달러화 강세를 심화시킬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시장의 관측”이라며 “엔저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달러화 강세로 원화도 약세가 되면 (엔저에 따른) 한국 기업들의 부담이 다소 줄어들 수 있다”고 말했다.

이지평 연구위원도 “유로화 약세는 원화 강세 요인으로 한국경제에 부담이 될 수 있지만 미 달러화 강세로 원화강세 압력이 완화되는 효과도 있다”며 “다른 신흥국에 비해 한국 경제와 통화(원화)가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점이 긍정적인 요인”이라고 말했다.

결국 이번 조치가 경제활성화 효과를 발휘하기까지 상당기간 동안 금융시장의 변동성 확대에 주의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hj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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