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
[어제의 오늘] ‘블록버스터’ 드레스덴 폭격
헤럴드생생뉴스| 2015-02-13 07:22
[헤럴드경제=정찬수 기자] 어둠이 드리워진 독일 드레스덴. 밤 10시가 되자 지축이 흔들릴 정도의 엔진음 하늘에 퍼졌습니다. 10여 분 뒤, 창 밖으로 고개를 내민 시민들은 달빛의 틈새를 볼 수 없을 정도의 수많은 ‘폭탄 비’를 목격합니다.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폭발음, 도시는 불지옥으로 변했습니다. 내일을 기약하며 잠자리에 들던 수많은 사람들은 비명소리를 내기도 전에 한 줌의 재로 변했습니다.

1945년 2월 13일은 작전명 ‘썬더크랩(Thunderclap)’이라고 불리는 드레스덴 폭격이 있던 날입니다. 극장가를 휩쓸 정도의 흥행영화를 칭하는 ‘블록버스터’라는 용어도 이 작전에서 비롯됐습니다. 도시의 블록을 날려버릴 만큼 무시무시한 화력을 쏟아부었다는 뜻이죠. 도시에 빨간 카펫을 깔듯 촘촘하게 폭탄을 쏟아 부었다는 뜻의 ‘융단폭격(Carpet Bombing)’이라는 말도 여기서 유래된 것으로 알려집니다.


연합군의 폭격작전은 이날부터 15일까지 총 3일에 걸쳐, 개미 한마리 살아남지 못할 정도의 많은 폭탄을 퍼부었습니다. 3일째엔 살아남은 소수의 시민들을 향해 기총사격까지 행했다고 하니 생존자를 찾아보기 힘들었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부정확한 인명피해에 대한 논란은 현재 진행형입니다. 당시 독일의 공식보고서와 묘지에 묻힌 희생자수, 재건과정에서 발견된 시신 등 정확한 산출이 어렵기 때문입니다. 일각에서는 2차 세계 대전 당시 유일하게 멀쩡했던 도시라는 점과 피난민이 많았다는 증거를 제시하며, 10만 명 이상이 사망했을 거라고 추측하기도 합니다.

연합군이 내세운 명분은 ‘군수물자의 공급처 차단’이었습니다. 실제 드레스덴은 베를린과 프라하, 비엔나를 잇는 교통의 요충지였습니다. 당시 언론들도 드레스덴을 군사도시의 모습으로 그리면서 당위성에 대한 여론을 형성했죠. 하지만 폭격의 타깃지역은 15만채 이상의 집들이 밀집된 민간인 거주지역이었습니다. 연합군이 생각한 공장지대는 드레스덴 중심부에서 떨어진 외곽지역이었죠. 때문에 연합군 수뇌부의 보복성 폭격이 아니냐는 의혹도 일었습니다. 당시 지휘관이었던 아더 해리스(Arthur Harris) 장군은 퇴역 이후까지 비난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힘들었죠.

and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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