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경제
[식품R&D 현장을 가다]‘신선’한 맥주로 입맛 잡는다
뉴스종합| 2015-02-23 11:15
수제 등 다양한 맥주 도전에 응전
국내 비가열처리 맥주의 산실로
발효효소 그대로 살려내 차별화
천연원료 따른 침전물도 최소화
뉴하이트, 한국음식과 환상궁합



최근 몇년 사이 한국 맥주시장은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라거 맥주가 지배하던 것에서 수제맥주나 하우스맥주가 시장을 조금씩 장악하고 들어온 것이다. 5억7000만년 전 지구에서 갑작스럽게 생물종이 대폭 늘어난 것을 ‘캄브리아기 대폭발’이라 하는데 2010년대의 한국 맥주시장은 분명 그에 버금갈만한 ‘종적 다양화’를 경험하고 있다.

국내 맥주시장의 2대 골리앗 사업자 중 하나인 하이트진로는 그런 면에서 다양한 맛으로 무장한 다윗 맥주들의 도전에 직면해 있다.

업계를 이끌어가는 사업자이자 “한국 맥주는 북한 대동강 맥주보다 맛이 없다”는 오명의 주역 중 하나로서, 이 도전에 응전해야할 동기는 충분한 것이다. 하이트진로는 그 응전의 무기로 ‘신선함’을 택했다.

하이트진로 홍천연구소 연구원이 맥주의 색, 알콜도수, 고(쓴맛) 단백질 등 성분을 분석하고 있다.
이상섭 기자/babtong@heraldcorp.com

하이트진로 홍천연구소는 신선함을 강조하는 국내 비가열처리 맥주의 산실이라 할만하다. 맥주에는 열로 살균을 하는 맥주와 열을 대지 않고 마이크로필터링을 하는 맥주가 있는데, 가열처리를 하지 않을 경우 효모가 발효하면서 생성되는 효소들이 그대로 맥주 안에 살아있기 때문에 신선한 맛을 담보할 수 있다.

문제는 이 신선함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충돌할 수밖에 없는 여러 지점들이 생긴다는 것이다. 맥주를 처음 따라 놓을 때와 같은 신선한 맛으로 즐길 수 있도록 돕는 거품이 불안정해지는 문제가 대표적이다.

주류개발 1팀 명기현 팀장은 “맥주의 거품은 단백질로 구성돼 있는데, 열처리를 하지 않을 경우 단백질을 끊어버리는 효소가 활성화돼 있는 상태로 남아있어 거품이 불안정한 상태로 남아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한다.

거품을 구성하는 단백질이 맥주 밑에 가라앉는 침전물을 만들어낸다는 것도 딜레마다. 천연원료를 사용하다 보면 침전물이 생기는 것이 필수적인데 국내 소비자들의 이물질에 대한 거부 반응이 있어 침전물을 최소화해야 한다. 하지만 이 경우 거품이 안 생기는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목넘김(Drink Ability) 역시 쉽지 않은 문제다. 한국 소비자들은 목넘김이 부드러운 맥주를 선호하는데, 그러다보면 이른바 맥주의 바디감이라는 것을 잃어버릴 수 밖에 없다. 싱거워지는 것이다.

명 팀장은 맥주를 만드는 과정을 ‘양날의 칼’에 비유하며 “끊임없이 변화하는 소비자 기호 사이에서 서로 충돌할 수밖에 없는 여러 요소들의 적절한 절충지대를 찾아내는 것이 우리가 하고 있는 연구의 핵심”이라고 했다.

지난해 출시된 뉴하이트는 이처럼 모순되는 요구들 사이에서 찾아낸 균형점에서 나온 제품이다. 한국 음식과 궁합이 맞고 신선함과 청량감을 줄 수 있는 제품이라는 것이 하이트진로 측의 설명이다.

이상섭 기자/babtong@heraldcorp.com

하지만 이 역시 맛이 가벼운 라거 맥주라는 점에서 최근 일고 있는 진한 맥주에 대한 소비자의 요구에 부응하기는 어려워 보이는 측면이 있다.

명 팀장은 국내에 맛이 가벼운 라거 맥주가 지배할 수밖에 없는 배경으로 ‘술의 관계성’을 거론했다. 술이라는 것이 필연적으로 함께 먹는 음식과의 궁합, 사회 음주 문화와의 궁합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명 팀장은 “독일 사람들은 안주를 안먹고 맥주 자체의 풍미를 즐기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맵고 짠 안주와 함께 먹기 때문에 중화를 시켜줄 수 있는 가벼운 술을 선호한다. 특히 소폭(소주+맥주)을 즐기는 문화도 고려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명 팀장은 최근 빗발치고 있는 진한 맥주에 대한 요구는 목소리가 큰 사람들, 이른바 ‘빅마우스(Big Mouth)’에 의한 착시 효과일 가능성을 제기했다. 그는 “해외여행지를 많이 가고, 대학생들이 어학 연수를 가는 것이 하나의 코스화가 돼가면서 다양한 맥주를 경험해 본 사람들이 한국에서도 그러한 수요를 형성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소위 침묵하는 다수의 선호도는 여전히 라거 맥주라는 것이다.

실제 꾸준히 소비자조사를 해 온 결과로도 청량감을 주는 라거 맥주에 대한 선호도가 더 높다는 것이 하이트진로 측의 설명이다. 국내 맥주의 대안으로 수입되는 맥주 가운데 인기 품목인 아사히, 하이네켄, 밀러 등이 모두 라거 맥주라는 점도 이러한 설명을 뒷받침한다.

명 팀장은 “앞으로 국내 맥주시장도 다양한 맛을 강조한 다품종 소량 시대가 올 것은 분명하지만, 하이트진로와 같은 빅브루어리에서 그러한 요구에 부응하려면 최소한의 수요가 담보돼야 한다”며 “하이트진로에서도 퀸즈에일과 같은 제품을 출시해 시장의 요구를 계속해서 살피고 반영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김성훈 기자/paq@heraldcorp.com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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