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일반
낙수효과 실패 선언과 성장의 새 기반에 대하여
뉴스종합| 2015-03-05 10:32
[헤럴드경제=함영훈 선임기자] ‘샴페인 탑(塔)’은 멋드러진 행사때 호스트가 귀빈들과 함께 벌이는 축하 세리모니의 대표적인 소재이다.

피라미드처럼 차곡차곡 쌓아올린 샴페인탑 맨 꼭대기 잔에 샴페인을 따르면 그 잔의 술이 넘쳐 밑의 잔으로 떨어지는 풍경이 장관이다. 호스트가 꼭대기 잔에 술을 붓고 샴페인 하방하는 모습에 귀빈들이 환호하는, 그들의 잔치는 화려하다.

맨 꼭대기 10층 잔을 큰 것으로 바꿔보았다. 잔을 조금 키웠더니 9,8,7,6층 잔까지만 샴페인이 도달했고, 잔을 좀 더 큰 것으로 했더니 9,8층잔들을 조금 채우고는 7층부터 맨 밑바닥 1층까지 샴페이 아예 도달하지 않았다. 지체 높은 양반들이 윗 잔부터 차례로 마시지만, 터뜨릴 샴페인의 총량은 갑자기 늘어나지 않는데, 윗 잔을 조금씩만 키워도 아래쪽에선 먹을 게 없다. 낙수효과의 실패이다.

▶윗잔 커지니 아랫잔이 채워지지 않는다.

‘낙수효과’를 신봉하며 윗 잔을 계속 키우던 집권 여당와 정부가 드디어 아래 쪽에 먹을 것이 없어졌음을 깨달았다.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이 최근 몇 주 동안 윗잔 줄이고(법인세제 조정 등), 아랫잔 키우자(임금 인상 등)면서 ‘소득성장론’을 지속적으로 주장하더니, 4일 최경환 경제부총리와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디플레를 우려하면서 소득성장의 필요성에 일부 동의했다.

이는 ‘낙수효과’에 대한 전면적 반성으로 들린다. ‘낙수효과(trickle down effect)’의 원론적 의미는 부유층의 투자·소비 증가가 저소득층의 소득 증대에 까지 영향을 미쳐 전체 국가적인 경기부양 효과로 나타나는 현상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는 국부 창출의 핵심 기반인 기업 규제를 풀어 산업이 잘 돌아가면 봉급쟁이들도 잘 먹고 잘 살수 있다는 ‘초이노믹스’로 구현됐다. 하지만 낙수효과는 성공적이지 못했다.


▶성장률의 1/3에 불과한 근로소득 성장

실제 최근 7년간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3.3%였는데, 노동자들의 실질임금인상률은 불과 1.3% 밖에 되지 않았고, 일용직 등 저소득층 소득은 7년동안 줄어버렸다.

최 부총리는 이미 지난해 10월24일 국회에 출석해 “과거엔 수출이 내수로 이어지고 낙수효과도 있었는데 현재 경제상황은 이 같은 선순환이 이어지지 않는 것 같다”는 새누리당 정문헌 의원의 말에 “최근 연계성이 떨어지는 추세에 있다”고 절반의 실패를 자인했다. 그는 낙수효과가 없었던 이유에 대해 ‘경제의 글로벌라이제이션’으로 변명했다. 기업이 남는 돈을 근로자 소득증대보다는 해외투자에 썼다는 뜻이다. 과연 그렇기만 할까.

당정이 4일 한 목소리로 디플레를 우려한 것은 중산층과 서민들에게는 내수 진작에 쓸 돈이 없다, 즉 기업이 작게는 수십억 많게는 수조원의 이익을 남기지만 봉급쟁이 소득 성장은 미미했음을 인정한 것을 뜻한다.

▶어정쩡했던 ‘근로소득 증대 3대 패키지’

최경환 경제팀이 지난해 내놓은 기업소득 환류세제, 배당소득 증대세제, 근로소득 증대세제 등 가계소득 증대를 위한 3대 패키지 역시 중산층,서민과는 거리가 멀다.

당초 500조원이 넘는 기업의 사내 유보금에 세금을 물림으로써 이를 투자로 돌리는 방향으로 갈 줄 알았던 기업소득 환류세제는 두루뭉술한 모습으로 법제화돼 투자(임금인상 포함) 유인 효과를 가늠할 수가 없다. 이 세제는 투자를 포함한 과세방식과 투자를 포함하지 않는 과세방식을 선택할 수 있게 하고 기준율을 시행령에서 정하도록 함으로써, 현재로서는 실효성을 정밀하게 분석하는 것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자산이 최소한 수십~수백억은 되어야 기대해 볼수 있는 배당소득 증대세제는 아예 서민, 중산층가 거리가 멀고, 근로소득 증대세제는 연말정산을 계기로 이미 필부필부(匹夫匹婦)의 거센 저항에 직면한 상태다.

▶야당 ‘소득성장론’에 최경환 “최저임금인상” 일단 화답

작년까지만해도 물가상승률이 둔화되면, “물가를 잘 잡았다”고 자랑하다가 마침내 실질 물가상승률(담뱃값 제외)이 마이너스로 돌아서자 ‘내수 둔화에 따른 디플레’를 시인한 최 부총리는 1차적 대안으로 최저임금의 시급한 인상안을 내놓았다.

새누리당은 서비스업 활성화(김무성)와 한국은행의 적극적인 개입(심재철)을 얘기했다. 야당은 법인세제 조정, 근로소득 인상 등을 얘기하지만, 어떤 방법으로 하겠다는 것인지, 아직 대안을 내놓지 못하는 상황이다.

어디부터 어느 정도 깊이로 메스를 대야할지 조심스럽다. 갑작스런 변화는 더 큰 부작용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에 디플레 문제야 말로 모든 정책-산업-금융-가계의 경제주체들이 머리를 맞대야 한다.

▶국부 일한 만큼 배분되나...가계 발언권 강화해야

지금까지 의사결정 권한을 정치-경제 주도층이 쥐고 있었다면, 이번 만큼은 가계에도 충분한 발언권을 부여했으면 한다.

일단 정치주도층이 경제주도층에 현재 매우 ‘위험하고도 곤란한’ 상황을 알린 것은 의미있다고 보여진다.

차제에 우리사회의 부의 총량이 경제 기여도만큼 매우 적절하게 분배되고 있는지, 고용계약, 도급계약, 납품계약, 예대마진, 서비스부문 요금 불균형, 세제, 부자세금 추징, 경제산업 정책 촉진자,심부름꾼으로서의 공복(公僕)의 자세, 돈 될 만한 진짜 신산업 분야의 발굴 등을 정밀하게 검토하고, 대안을 마련했으면 한다.

▶세계 3대 경제기구 “소득불균형 해소가 성장 기반” 한 목소리

아울러 ‘공정한 분배’를 말하는 순간, ‘좌빨’이나 ‘종북’으로 매도하는 짓거리는 제발 그만하자. 세계은행(IBRD)과 국제통화기금(IMF),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이 최근 한목소리로 소득불평등 해소를 강조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IBRD는 소득 불평등이 심해지면 경제 성장해도 부유층만 좋아진다는 연구결과를 제시했고, IMF는 “소득 불평등이 성장을 저해할 수 있으므로 과세 등을 통한 적절한 수준의 소득재분배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한 바 있다. OECD도 최근 ‘소득 분배와 빈곤’ 보고서에서 “지난 30년간 선진국에서 소득 불균형이 심해져서 이를 해결하기 위해 조세 제도 개혁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불균형 해소가 성장의 필수불가결한 요소로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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