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일반
[함영훈의 이슈프리즘] 日 징용 시설 유네스코 등재 막아야 한다.
뉴스종합| 2015-04-03 09:23
[헤럴드경제=함영훈 기자] 일반적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이 될 수 있는 핵심적인 가치는 ‘탁월한 보편적 가치’(Outstanding Universal Value)와 진정성(Authenticity)이다. 진정성은 휴머니즘과 인류공영, 이타주의 가치를 포함한다. 이들 가치에는 타문화에 대한 이해, 관용, 존중, 인권, 평화의 정신이 깃들어 있다.

유네스코는 문화유산이 될 수 있는 기준으로 ▷인간의 창의성으로 빚어진 걸작 ▷조경 디자인에 있어 인간 가치의 중요한 나눔과 교류를 반영한 것 ▷사라진 전통의 독보적이고 특출한 증거 ▷인류 역사에 있어 중요 단계를 예증하는 건물, 경관, 기술 ▷환경이나 인간의 상호 작용이나 문화를 대변하는 전통적 정주지 ▷사건이나 실존하는 전통, 사상이나 신조, 보편적 중요성이 탁월한 예술 및 문학작품 등을 제시한다.

이런 기준에 따라 페루 마추픽추, 한국 남한산성, 태국 아유타야 유적, 인도네시아 보로부두르 사원, 리비아 가다메스 옛도시, 폴란드 아우슈비츠 수용소 등이 유네스코 문화유산이 됐다.

아우슈비츠 수용소는 이채롭다. 탁월한 보편적 가치, 휴머니즘, 평화, 관용, 진정성과는 정반대의 성격을 지닌다. 하지만 유대인이 대거 학살된 이 수용소는 나치의 만행을 고발하고 다시는 이런 반인륜적 행위가 재발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참회의 유산’으로서 가치를 지닌다. 아울러 아우슈비치 수용소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될 때에도,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침략자였던 독일은 진정성 있는 사죄와 재발방지를 약속했다.

일본이 일제시대 한국 등에서 강제 징집한 징용자들을 죽음의 고역으로 내몰았던 강제징집장소를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신청했고, 오는 6월 말 독일 본에서 열리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등재 여부가 결정된다. 일본의 신청이유는 ‘만행에 대한 반성’이 아니라 ‘경제발전의 터전’으로서의 가치를 인정해 달라는 것이다. 적반하장(賊反荷杖)도 이런 적반하장이 있을까.

그 장소들에는 강제징용됐던 아시아인들의 피로 얼룩져 있다. 미쓰비시 조선소, 나가사키 조선소, 하시마탄광, 신일본제철, 야하타제철소 등에는 죽음과 같은 노동, 학대과 학살의 흔적, 죽어간 아시아인 혼령들의 분노가 아로새겨져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나가사키 조선소에서는 조선인 4700여명이 장시간 노동 구타 임금체불 강요 등 열악한 환경에서 노예처럼 일하다 하루에도 몇 사람씩 죽어 나가기 일쑤였고, 이 중 1600여명은 원폭투하때 목숨을 잃었다.

군함도의 하시마 탄광 역시 한번 들어가면 죽어서야 탄광을 빠져나갈 수 있다는 곳이다. 징용자들은 이곳은 ‘지옥섬’이라 불렀다. 1944년 이후 한국인 800여명이 이곳에 장제징용돼 노동착취에 시달리다 무참히 희생당했다. 징용자들은 관동대지진때 이유없이 맞아죽기도 했다. 그 수가 무려 수십만명에 달한다.

일본은 아시아인의 피로 얼룩진 이 곳들은 산업경제를 일군 곳으로 둔갑시켜 과거를 감추려 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일본의 극악무도한 과거사에 대한 국제사회의 여론이 둔감한 틈을 타 일본의 군국주의 망령이 되살아나는 듯 하다.

최근 문화재환수국제연대,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일제피해자공제조합이 국회 이원욱 의원과 함께 아베 정부의 조선인 징용시설 등이 포함된 산업유산의 유네스코 등재를 반대한다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들은 “조선인 등 수많은 피압박민족의 목숨과 피땀이 어린 곳, 침략전쟁의 군사물자 전초기지로 종사한 그 곳이 과연 인류문명의 보편타당한 보존 가치가 있는 곳인가”라면서 “아베정부가 노리는 과거 식민지배와 침략전쟁을 미화하기 위한 음모에 경악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어 “유네스코가 일본의 자금을 앞세운 로비에 무너진다면 국제사화가 추구하는 공동선은 사라지고 약육강식의 정글사회로 돌아갈 것”이라며 “국내외적으로 양심과 문명의 이름으로 막아야한다”고 강조했다.

부당한 것의 방치와 외면은 용인으로 해석되는 때가 많다. 그리고 이런 것이 누적되면 상식과 가치가 전도되고, 적반하장이 비일비재하게 나타나다가 결국 우리와 우리 공동체를 부식시킨다.

1876년 강화도 조약때 ‘설마 일본의 속국이 되기야 하겠어’ 했지만, 우리는 그후 30년간 숱한 망조(亡兆:망할 징조)를 노출한 끝에 일본에 힘 한번 써보지 못하고 먹힌 적이 있다.

독일과는 다른 일본 정부의 태도가 아베 정권 기조대로 유지될 경우, 결국 그들은 정치, 경제, 역사,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우리의 위협 대상이 될 수 밖에 없다.

한국인을 비롯한 아시아인들의 죽음이 일본의 영광으로 둔갑하는 일이 없도록, 문화재청을 비롯한 정부와 국회, 외교당국, 민간 외교관, NGO 등의 일사불란한 대응이 요구된다.

/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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