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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금 못 내서 교도소에 ‘몸빵’ 가는 현대판 장발장 연 4만명
뉴스종합| 2015-06-04 07:36
[헤럴드경제=이세진 기자] # 서울 강남구에 사는 박정규(39ㆍ가명) 씨는 지난해 12월 150만원이 쓰여있는 벌금 통지서를 받았다. 

사업에 실패한 후 1년여 간 개인 자가용을 이용한 불법 택시인 이른바 ‘나라시’를 운행하다 경찰 단속에 적발된 것이다. 

박씨는 “매일매일 벌어 먹고 사는데, 아이를 굶기며까지 목돈 150만원을 마련할 수 없다”며 검찰에 분할납부가 가능한지 문의했지만 ‘안 된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벌금 내기를 차일피일 미뤘더니 몇차례 경고장이 날라왔고 급기야 수배자 신세가 됐다.
사진=123RF

벌금을 낼 돈이 없어 교도소에서 몸으로 죗값을 치르는 이른바 ‘환형유치자’가 해마다 4만명에 이르는 등 갈수록 증가추세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벌금을 낼 형편이 못 돼 지은 죄보다 큰 형벌을 받아야 하는 ‘장발장’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4일 법무부에 따르면, 2012년에는 3만9283명, 2013년 4만82명, 2014년 4만2871명이 노역장에 유치 집행을 완료했거나 진행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벌금형은 일반적으로 징역ㆍ금고 등 자유형보다 죄질이 가벼운 범죄에 선고된다. 또 신체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 너무 가혹하다는 지적에 따라 자유형의 대체 수단으로 최근 벌금형의 선고 비율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하지만 우리나라 형법에는 ‘환형유치제도’를 두고 있어 벌금을 내지 못한 사람을 교도소에서 일정기간 노역에 종사하게 해 벌금형을 자유형으로 대체할 수 있도록 하는 수단도 마련돼 있다. 


문제는 빈곤계층일수록 생계형 범죄 등 가벼운 죄질로 벌금형을 선고받고도 이를 내지 못해 노역장에 유치되는 사례가 많아지면서 이 제도의 적절성이 도마에 오른 것이다.

이들에겐 벌금형이 사실상 ‘자유형화’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지난해 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이 508억원의 벌금을 선고받고도 일당 5억원짜리 ‘황제노역’을 한 것처럼 부자들이 소위 ‘몸빵’으로 때우려는 데 환형유치제가 악용되기도 한다. 반면 몇십만 원의 적은 벌금도 낼 능력이 없어 생계를 뒤로하고 ‘몸빵’해야 하는 사람도 부지기수다.

새정치민주연합 홍종학의원실에 따르면 우리 형법은 개인의 재산ㆍ소득수준에 비례해 벌금을 책정하는 것이 아니라 죄목에 따라 누구나 똑같은 액수의 벌금을 내야하는 ‘총액벌금제’를 기반으로 하고 있어 형평성 문제도 제기된다.

아울러 현 제도에서는 벌금을 분할납부할 수 없이 선고받고 30일 이내에 한꺼번에 내야 해, 목돈을 마련하기 어려운 사람들에겐 큰 부담이 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장발장은행 대표)은 “징역형에는 집행유예가 있는데, 상대적으로 가벼운 형벌인 벌금형에는 이마저도 없어 불평등하다”며, “왜 현 제도는 더 가벼운 범죄에는 관용하지 않는 건지 의문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오 사무국장은 “벌금 미납으로 감옥에 가게되면 가족관계도 단절되고 있던 직장마저도 잃을 가능성이 높아 생계에 더욱 치명적이다”라고 덧붙였다.

최정학 방송통신대 법대 교수는 “소득수준에 비례해 벌금을 차등적으로 매기는 ‘일수벌금제’가 현 상황에서 생각할 수 있는 최대한의 대안이 될 것”이라며, “독일 등 대부분 유럽 국가에서 이를 채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jin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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