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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미생’들, 난 뛰고싶다…
엔터테인먼트| 2015-06-08 11:27

“내게 축구란 삶”(이운재 U-23 청소년대표팀 코치)이었고, ‘꿈’이었으며, “살기 위한 선택”(최진철 U-17 청소년대표팀 감독)이었다. 최진철 감독은 “좋아서 시작한 일이었다지만 어느 시기가 오면 직업으로 가져가야 하기에 먹고 살기 위한, 생존의 방편이 됐다”고, “내가 잘 해야 프로에 입단할 수 있고, 그래야 더 좋은 연봉을 받을 수 있고, 가족들이 더 편안하게 생활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33년을 축구로 살아온” 이운재 코치는 “축구를 했기에 살 수 있었고, 그것으로 사람들에게 영향을 받고, 영향을 주는 사람이 됐다”고 돌아봤다.

‘축구’로 인생의 정점에 올랐던 이들뿐 아니라 ‘직업인’으로 향하는 좁은 문턱 앞에서 수많은 좌절을 겪어야 하는 청춘들에게도 이 단어의 무게는 다르지 않았다.

“그럼에도 놓을 수 없는 이유요? 운동을 시작하게 되면, 모두에게 꿈은 하나잖아요. 저 역시 축구선수가 되겠다는 꿈으로 달려왔어요. 이 자리에 모인 선수들 모두 최소 5년에서 10년 이상 달려온 그 꿈이 한 순간에 무너져버린거죠. 포기할 수 없죠.”(김동욱ㆍ21)

초등학교 때 축구를 시작한 김동욱씨는 MBC 리토국제축구학교 출신이다. 김씨는 초등학교 6학년 때 1994년~1996년에 출생한 아이들을 대상으로 장학생을 선발, 1년간 유학을 보내는 축구 꿈나무 선발 프로젝트를 통해 중국 홍타스포츠센터에서 꿈을 키웠다. 이후 경희고등학교 리그에서 활약하고, K3리그에 소속돼 선수생활을 이어왔지만 여섯 번이나 찾아온 잦은 부상은 아직도 소년같은 김동욱씨의 발목을 잡았다. 너무 어린 나이에 접어야 했던 꿈은 예기치 않게 찾아온 기회 앞에서 다시 희망을 꿈꾸게 됐다.

여러 사정으로 축구를 그만둬야 했던 ‘축구미생’들의 진짜 축구이야기를 담아낼 KBS 2TV 새 예능 프로그램 ‘청춘FC’가 지난 1~2일 양일간 경기도 수원 월드컵경기장 보조경기장에서 1차테스트를 진행했다. 윤병찬 기자/yoon4698@heraldcorp.com

지난 1, 2일 양일간 경기도 수원 월드컵경기장 보조경기장에선 KBS 2TV 새 예능 프로그램 ‘청춘FC’(가제)의 촬영이 한창이었다. ‘청춘FC’는 여러 이유로 축구를 포기해야했던 유망주들에게 재기의 발판을 마련해주고자 기획된 리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이다. 방송 시작에 앞서 총 22명의 ‘청춘FC’ 선수들을 뽑는 여정은 지난 4월 시작됐다. 무려 2300여명의 지원자가 몰린 서류심사를 거쳐 520여명이 선발, 이날 1차 테스트가 진행됐다. ‘청춘FC’의 공동감독으로 함께 하는 안정환, 이을용과 더불어 신태용 올림픽팀 감독과 이운재 U-23 청소년대표팀 코치, 최진철 U-17 청소년대표팀 감독이 선수들을 선발하는 심사위원으로 함께 했다.

이른 아침부터 저녁까지 진행된 1차 테스트에 모인 선수들의 면면은 다양하다. 20세부터 42세 지원자까지 모였고, 성별과 국적도 제한이 없다. 저마다 한 자리씩 꿰차 치열한 축구인생을 살아왔기에 누구보다 서로의 마음도 잘 알고 있다. 열다섯 살에 최연소로 FC서울에 입단해 프로리그를 누볐고, 청소년 대표ㆍ올림픽 대표로 태극마크를 달았던 한동원(30) 선수도 이 자리에 섰다. 이미 국가대표에, 프로리그 활약 경험이 있는 선수로서는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아침까지 나와야 하나 말아냐 하나 고민이 많았어요. 하지만 저도 어영부영 하려고 나온 건 아니에요. 이 자리에 모인 선수들이 다 같은 마음일 거에요. 전 프로에 있었지만, 다들 축구 하나만 보고 살아왔는데 부상 등 여러 이유로 꿈을 접고 다른 삶을 살고 있어요. 이런 기회를 통해 자신의 꿈을 다시 한 번 펼칠 수 있다면 더없이 좋은 기회죠. 다들 기본기가 있더라고요. 될지 안될지는 모르지만, 된다면 열심히 하고 싶어요.”(한동원)

숙소비, 전지훈련비, 식비, 코치들의 월급까지 지원해야하는 것이 만만치 않아 서울 대학리그에서 입단 지원을 받고도 지방대를 전전하며 방황했던 윤재근(22)씨에게도 ‘청춘FC’는 “다시 부활할 수 있는 희망”(윤재근 어머니 김민수씨)이었다. 

지도자와의 불화로 프로의 꿈을 접은 지원자도 있었다. 박지성 축구센터에서 강사로 활약했고, 현재 한체대 스포츠코칭 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밟고 있는 방진규(28)씨는 연속 두 경기를 뛰었다. “오랜만에 그라운드를 뛰는 설렘을 느꼈다. 이 자리에 모인 500명 모두 아쉬움이 크리라 생각한다. 이들이 원하는 건 그라운드에서 뛸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것”이라며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이지만 스포츠는 경쟁을 수반하다 보니 1, 2, 3위만 기억한다. 프로입문의 길은 좁고, 운동에만 매달려왔는데 은퇴 이후 삶의 방향에 대한 교육을 받지 못하니 운동이 사라진 이후 할 수 있는게 없는 경우가 많다. 이런 기회를 부여받는 것 자체가 큰 기회"라고 말했다.

“누군가의 인생을 바꿔놓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잠도 못 잘 만큼 조심스럽다”(안정환)는 ‘청춘FC’는 한 팀을 꾸리기 위한 과정으로 ‘오디션’이라는 방식을 택했지만, 이 프로그램은 ‘생존경쟁’과 ‘승자독식’의 가혹함을 답습하는 흔한 오디션 프로그램은 아니다.

연출을 맡은 최재형 PD는 “젊은 시절 무언가에 좌절하는 원인은 자기 자신일 수도 있고, 외부에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성공하지 못했다고 그걸로 끝나선 안된다고 생각했다”며 “초등학교 때 대학이 결정되는 사회, 삼포세대가 화두가 된 사회가 건강한 사회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두 번째, 세 번째 기회가 있어야 사회가 건강해지지 않을까 하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고 말했다. 프로그램의 아이디어는 벨기에 2부리그 AFC투비즈 구단주인 심찬구 스포티즌 대표의 “사정으로 축구를 그만둔 선수들이 있다면 영입하고 싶다”는 제안에서 시작됐다. 

최 PD는 “프로그램은 오디션처럼 보이지만, 그보다는 여러 심사 과정 등을 통해 선수들이 발전해나가는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고 했다. 한 사람에게라도 기회를 주기 위해 서류심사와 몇 단계의 테스트를 거쳐 22명의 최종 멤버를 선발한다.

11명씩 팀을 이뤄 30분간 진행한 1차 테스트는 심사위원들이 각자의 포지션에 맞게 지구력, 체력, 경기운영능력 등의 항목으로 점수를 매긴다. 생전 처음 만난 선수들이 호흡을 맞춰 완벽한 경기를 끌어내는 것이 쉽지 않아 보이지만 이운재 코치는 “축구는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운동이 아니다. 팀 안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여줘야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가장 중요한 건 하고자 하는 마음, 열정”이라고 심사위원들은 입을 모은다. 

바늘구멍 같은 성공의 길을 비집고 들어온 선배들이기에 “어린 선수들이 각자의 사정으로 좌절하고 입은 마음의 상처”(이을용)를 누구보다 이해했다. “문득 나만 너무 편하게 축구를 했던 것은 아닌지 미안한 마음”(안정환)도 따라온다. “두 번째 기회를 주자는 취지이지만 이미 한 번의 상처를 안았던 선수들에게 또 한 번 상처가 될 수도 있다”는 우려도 없진 않다. “합류한 22명의 선수들을 프로팀에 넣어준다는 약속을 할 수는 없기 때문”(최재형 PD)이다. 하지만 이 자리에 모인 선수들은 “일상으로 돌아가더라도 이 기회가 큰 원동력이 될 것”(방진규)라고 말한다. 이운재 코치 역시 “꿈을 위해 도전한 자체는 성공한 사람이다. 어떤 결과가 오든 이것이 자기 인생에 있어 마침표는 아니”라며 “자기 자신에게 채찍질을 할 수 있는 시간이자 새로운 도전이 될 것”이라며 응원한다.

‘청춘FC’의 목표는 한 팀을 만들고, 이 선수들이 뛸 수 있는 새로운 팀을 찾는 과정이다. 제작진은 지난 6일 500여명의 지원자에게 1차 테스트 합격자를 개별통보했고, 오는 14일과 21일 2차테스트를 진행한다. 7월 7일에는 벨기에를 베이스캠프로 삼아, 6주간의 해외 전지훈련을 떠난다. 첫 방송은 7월 중순이다.

고승희 기자/shee@heraldcorp.com

사진=윤병찬 기자/yoon4698@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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