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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인터뷰]윤계상 "'소수의견', 열등감에 사로잡힌 나의 마지막 모습"
엔터테인먼트| 2015-06-24 15:06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영화 ‘소수의견’이 2013년 크랭크업 이후에 2년 후인 2015년 6월 24일 빛을 보게 됐다. 우여곡절 끝에 나왔기 때문일까. 배우 윤계상은 ‘소수의견’에 많은 애틋함을 품고 있었다. 2년 후 전 촬영현장과 그 곳을 감싸는 공기까지 회상해내며 ‘소수의견’에 대한 애정을 쏟아냈다. 그런 윤계상을 본지가 23일 서울 종로구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만나봤다.

'소수의견'은 손아람 작가의 원작을 영화화한 작품으로 강제철거 현장에서 일어난 두 젊은이의 죽음을 둘러싸고 대한민국 사상 최초 100원짜리 국가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한 변호인단과 검찰의 진실공방을 둘러싼 법정드라마다.



배우로서 2년씩이나 막연히 개봉일을 기다리는 일은 쉽지 않았을 터. 하지만 윤계상은 작품과 김성제 감독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에 단 한 번도 ‘소수의견’을 포기하지 않았다.

“이 세상에 나왔다는 것 자체만으로 행복하고 감사합니다. 평가가 좋아서 몸둘바를 모르겠어요.”

“사실 빨리 개봉 할 줄 알았는데 이유는 모르겠지만 자꾸 늦춰졌어요. 배급사에서는 시기 조절을 하고 있었고요. 영화를 1년 반 전에 봤을 때 음악이나 편집이 다 되지 않았어도 완성도가 꽤 있었어요. 보는데 재미있더라고요. 언제 개봉 될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히 개봉을 할 수 있을 거란 믿음이 있었어요.”

윤계상은 지방대 출신의 2년차 국선 변호사 윤진원 역을 맡아 철거 현장에서 열여섯 아들을 잃고 의경을 죽인 철거 농성자의 공판 변론을 맡게 된다. 처음에는 피고인 박재호(이경영)의 무죄 주장에 관심을 보이지 않던 그가, 사건을 알아갈 수록 대한민국 권력 집단의 음모를 알게되며 선배 장대석(유해진)과 진실을 밝혀내고자 한다. 이 과정에서 윤계상은 윤진원의 감정선에 완벽하게 몰입해 설득력 있는 연기를 펼쳤다. 그리고 무엇보다 울림을 주는 진심이 담겨있었다.

"그 때나 지금이나 연기는 점점 작품을 하면 할 수록 좋아지는 것 같아요. 배역에 따라 옷이 자기에게 맞는건지 안맞는건지 달라지는 것 같아요. '소수의견'은 제 연기 결과 잘 맞아 떨어져서 그래보였던 것 같아요. 다른 작품도 항상 똑같이 연기에 임합니다."



윤진원은 덤덤하게 사건을 따라가지만, 현실을 알아갈 수록 분노한다. 하지만 감정을 꾹꾹 눌러담는다. 윤계상은 윤진원을 연기하며 느끼던 감정들을 연기하며 분노가 표출될 때마다 김성제 감독이 절제할 것을 요구했다고 전했다.

"감독님께서 절제된 윤진원을 원하셨어요. 사건 자체가 화가 많이 나잖아요. 공수경 기자가 기사를 터뜨린다고 할 때는 정말 화가 나더라고요. 저도 모르게 화를 내고 있었어요. 그 때 감독님께서 '윤진원이 그러면 안된다. 냉철하게 가자'고 주문을 하시더라고요."

눌러담는 분노 속에서 분출할 수 있는 틈이 생길 때마다 윤계상은 생각나는 애드리브를 펼치기도 했다. 윤계상은 극중 애드리브였던 두 장면을 설명했다.

법정 공방신에서 행동 같은건 섬세하게 계산을 한건 아니었어요. 홍제덕 검사가 웃으니까 저도 모르게 짜증이 나더라고요.(웃음). 그래서 그런 표정이 나오기도 하고 마지막 장면에 홍제덕 검사에게 받은 명함을 날리잖아요. 그것도 애드리브였어요. 원래는 그냥 쳐다보는 것이었어요. 분노를 누르니까 분출할 수 있는 공간이 세어나오더라고요."



2년 전 윤계상은 연기에 대한 갈증은 물론, 상업영화 흥행에 대한 욕심도 있었다. 또한 '소수의견'이 개봉하면 당시 용산참사라는 사건과 닮아있는 부분이 많았기 때문에 출연한다면 많은 말들이 자신을 둘러쌀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일까. 그렇기 때문일까. 그는 자신과 묘하게 닮아있는 윤진원을 놓을 수 없었다.

"절 캐스팅한 이유가 있을 것 같아요. 감독님과 저랑 많이 비슷하거든요. 상업영화에 입봉하셔야 하는데 이야기가 있는 작품으로 데뷔를 하고 싶으셨던 것 같아요. 2013년도의 전 상업영화의 성공을 원했어요. 그러면서도 배우적인 느낌도 포기를 못하겠더라고요. 그래서 '소수의견'이 들어왔을 때 어려웠어요. 너무나 배우적인 느낌으로 가고 싶지만, 이게 또 사회적인 이슈가 맞닿아져있으니 '할 수 있을까' 싶더라고요. 결국은 포기를 못했어요. 그런 지점이 저와 윤진원이 비슷하지 않나 싶네요. 의원이 윤진원에게 '인생에 가장 큰 사건이 될 수도 있다'는 말에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되고싶은 열망이 담겨 있는, 그게 윤진원, 윤계상, 김성제 감독에게 해당되는 지점이었습니다."

유해진은 '소수의견' 공식 행사에서 "처음에는 서로 낯을 가려 촬영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촬영을 하는 동안 두 사람은 대기시간에 맥주를 먹고 연기 이야기와 깊은 속내까지 털어놓고 급속도로 친해졌다. 두 사람의 호흡은 '소수의견'을 본 자들은 말 안해도 알 것이다.

"유해진 선배와는 회차가 좀 진행된 상황에서 만났어요. 그 때 제가 말을 걸수도 없을 정도로 집중하고 있었나봐요. 그도 그럴 것이 이경영, 김의성, 권해효, 그리고 유해진 선배까지 함께하는데 긴장을 안할 수가 없었죠. 그러다가 둘이 술 먹고 차 안에서 이야기하는 신을 촬영하는데 네 시간 정도 시간이 생겨서 그 때 해진 선배랑 많은 이야기 했어요. 그 때 맥주 두 캔 먹고 속 이야기를 하다보니 젖어들었던 것 같아요. 그 뒤로는 윤진원과 장대석이 되어버렸어요. 급친해졌죠. 하하."

윤계상은 많은 배우들과 어우러지는 연기보다 스크린에서는 혼자 이끄는 자리에 있던 종종 있었다. '소수의견'을 통해 배우들이 주고 받는 '호흡'이란 느끼고 체감할 수 있었단다. '소수의견'은 열등감에 사로잡혀있던 윤계상의 마지막 모습이다. 이는 윤계상의 배우 인생에서 많은 영향을 끼쳤고 이제 그는 한결 여유로운 마음가짐으로 연기에 임한다.

"정말 좋은 배우가 무엇인지 '소수의견' 찍으면서 많이 느꼈어요. 좋은 배우는 시간이 걸리는 것 같아요. 선배님들과 교류하면서 이게 저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란걸 알았어요. 또 앙상블에 대한 느낌도 확실하게 알았어요. '소수의견'을 촬영하며 전환점을 맞이한 것 같아요. 그렇게 하면서 힘을 빼고 다음 작품에 대한 그림을 그린 것 같네요."

"지금은 뜻대로 되지 않는 부분은 전혀 생각을 하지 않아요. 연기만 열심히 하고 맡은 부분만 최선을 다하면 되는거죠. 예전에는 편집포인트, 이런것까지 조율을 다할 수 있을 줄 알았어요. 하하. 당장이 급했죠. 그걸 표현하고 싶었던거고요. 그런데 그건 절대 제 스스로가 할 수 있는기 아니더라고요. 어느 순간 실력이 됐을 때, 기적같은 시나리오가 찾아오고, 기적같이 잘 엮어지고, 환경도 잘 맞았을 때 관객들도 인정해주는 것 같아요."

윤계상은 연기에 대한 배우들의 열정이 돋보이는 에피소드 하나를 공개했다. 법정 공방신에서 중요한 단서가 되는 녹음기를 윤진원이 앞으로 나가서 말하느냐, 마느냐로 이경영, 권해효 등과 함께 9시간 토론을 나눴다고.

"선배님들의 내공과 욕심이 대단하세요. 감독님이 다 배우한테 동선을 맡기셨거든요. 연습을 진짜 많이 했어요. 절 사랑해주는 팬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건 옹호를 해주는데, 대선배님들이시고 전문가들인데 그 앞에서 독백같은거 하는게 많이 긴장이 되더라고요."

"용어도 생소한데, 그 용어들로 관객들을 설득해야하잖아요. 또 지루하지 않게 들려야 하고요. 내가 무슨 뜻인지도 모르면서 하는건 아닌 것 같아요. 공부도 하고 모르는게 있을 때마다 감독님께 계속 물어봤어요."



국민참여재판 전용 검사 역할을 맡은 오연아의 모습도 신선하다. 장면 중 동정심을 호소하며 국민편인 것 같던 검사가 아이의 손을 잡고 재벌가로 들어가는 장면이 있었지만 편집됐다.

"그 컷이 독특하고 설득력이 있을 것 같았는데 편집되서 조금 아쉽네요. 검사같지 않게 심리전으로 가자는 감독님의 노림수가 적중했던 것 같아요."

윤계상에게 ''소수의견'은 현실을 그렸나?'라고 물었다. 그의 대답은 돌아가지 않고 명확했다. 어쩌면 윤진원과 윤계상은 '소신'이란 것을 놓지 않으려는 것이 제일 닮아있는지도 모르겠다.

"여지가 없었다면 사실이 아니죠. 배우는 작품으로 자기의 생각을 표현하는게 잘하는 것 같아요. '소수의견'을 한 이유가 전 소수를 지지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태가 벌어진다면 윤진원 같고 싶었어요. 그랬으면 하는 바람에서 선택을 했죠. 어떤 후폭풍이 온다고 하더라고 그건 저의 선택이고 2년 전에 각오를 했어요."

결말은 씁쓸하다. 홍제덕 검사는 옷을 벗었지만 여전히 권력층이고, 윤진원도 그 자리다. 그리고 사건은 점점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멀어진다.

"박재호와 윤진원, 장대석이 마지막에 바닷가를 찾아가는 장면이 편집됐어요. 거기서 셋이 슬픈 눈으로 바다를 쳐다보고 있으면 박재호를 향해 '저분한테는 아들도 없고, 누군가를 살해했다는 죄책감으로 평생을 살아야 한다. 안타깝다'는 식으로 이야기해요. 이게 현실인 것 같아요."

"영화를 찍으면서 참 씁쓸했어요. 사실이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배우로서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어떤 분의 이야기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데 이게 너무 사실같이 느껴질 때는 이유가 있죠. 내 눈으로 보진 못했으니까 아니라고 믿고 싶은데, 보여드리고는 싶어요. 이런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건 충분히 가능하니까 봐줬으면 좋겠어요."

그는 자신의 필모그래피에 어디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은 한 작품을 더 올려놨다. 윤계상의 출연작들을 보면 필자만의 생각일지 모르겠으나 그가 걸어가고자 하는 길이 보이는 것도 같다고도 느꼈다.

"잘 걸어왔다고 생각해요. 제 작품들 모두 정말 부끄럽지 않아요. 그 나이에 맞는 가장 베스트인 작품을 해온 것 같아요. '발레교습소' 민재부터 '소수의견' 윤진원까지 성장이 똑같아요. 주인공들이 한치의 오차도 없이 앞서가지도 않고요. '소수의견'이 먼저 개봉하고 '레드카펫'이 뒤에 개봉했어요 그랬을 것 같아요. 변호사가 에로 감독이 되있는 것 같잖아요. 하하. 저는 그게 너무 좋아요. 저를 기록하고 배우로서 조금이나마 성장하는 것이 기분이 좋습니다."

유지윤 이슈팀기자 /jiyoon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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