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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미는 10단 조치훈
엔터테인먼트| 2015-07-27 11:16
지난 26일 한국기원에서는 한국 바둑사에 남을 기념대국이 열렸다.

어린 나이에 일본에서 바둑유학을 한 뒤 각각 한국과 일본의 기계를 평정한 조훈현(62) 9단과 조치훈 9단(59)이 한국 현대바둑 70주년을 기념해 대국을 가졌다. 깜짝 놀랄 승부수를 던지며 수싸움을 벌이던 두 전설의 대국은 초읽기에 쫓기던 조치훈 9단이 시간패를 하며 아쉽게 막을 내렸다. TV와 인터넷으로 지켜보던 시청자는 물론, 홍익동 한국기원 공개해설장을 찾아 대국을 지켜보던 팬들은 계가까지 이어지지 못한 것에 대해 아쉬운 탄성을 내뱉었다.

하지만 팬들의 아쉬움은 숨겨졌던 조치훈 9단의 반전매력 가득한 인터뷰를 지켜보며 즐거움으로 변했다. 
조훈현 9단(왼쪽)과 함께 바둑팬들의 질문에 웃으며 대답하는 조치훈 9단의 모습.
[사진제공=한국기원]

조치훈이 누구인가. ’목숨을 걸고 둔다‘는 그의 신조처럼 교통사고를 당한 뒤 바둑판위에서 죽겠다며 강행했던 휠체어 대국, 3연패 뒤 4연승을 거둔 것은 또 몇번인가. 본인방 10연패, 대삼관 3회 달성은 누구도 이루지 못한 위업이다. 8시간의 제한시간도 모자라 한 수 한 수 초에 몰리면서도 믿기힘든 묘수를 만들어냈다. 자신의 수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머리를 쥐어뜯고 손으로 내려치는 것도 다반사. 6세때 일본에 건너가 우리 말을 쓰는 모습을 보기 힘들었던 국내 바둑팬들로선 조치훈의 이미지는 친근하다기 보다 ’범접하기 어려운 천재‘에 가깝다.

하지만 이날 인터뷰에서 조치훈은 완전히 예상을 뒤엎었다.

소감을 묻자 “조훈현 선배가 나보다 세니까 내가 진 거다. 진 사람은 말하면 안된다”며 겸손하게 웃음으로 답한 조치훈. 중반 우변 백돌의 어깨를 짚은 수에 대해 묻자 “멋있어 보이려고 뒀다. 안멋있는 사람이 그러면 안되는데…”라고 말해 팬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또 정리되지 않은 헝클어진 머리 스타일을 고수하는 이유가 있냐는 질문에 “맨날 바둑두면서 머리를 때리고 잡아당기고 해서 그렇다. 집에 빗도 없다. 누가 사주면 잘 빗을텐데…”라고 말했다. 해설을 했던 유창혁 9단이 ’평소 패하면 절대 웃지 않고 말을 붙이기도 어려운데 오늘은 웃으신다‘고 하자 조치훈은 “사람이 훌륭해졌다. 바둑이 약해지니 사람이 훌륭해진다”며 겸손하면서 재치있게 답했다. 또 대국을 지켜본 김지석 9단이 “저를 아시는지 모르겠다. 후배기사에게 조언을 해달라”고 하자 조치훈은 “지금 세계 정상의 선수 아닌가. 인터넷으로 기보를 많이 봤다. 나한테 바둑이 세지는 법을 알려달라”고 되받아쳤다.

또 “한국바둑리그에서 뛸 의사는 없느냐”는 팬의 질문에 “뜻은 있지만, 한국에는 조훈현 선배가 계신다. 훌륭한 선배가 계시니 난 일본에 있겠다”며 활짝 웃었다. 또 “평생 가장 기억에 남는 대국이 무엇인가. 혹시 후지사와 9단과의 대국인가”라는 팬의 질문에는 “오늘 대국이다. ’열‘소리가 아직도 귀에 남아있다”며 농담을 던졌다. 지금도 바둑공부를 하느냐는 물음에도 “젊었을 때보다 더 많이 한다. 그런데 바둑돌을 담고나면 다 잊어버린다”고 말했다.

조치훈9단의 잇단 ’개그맨급 인터뷰‘에 진행자는 물론 객석의 팬들은 계속 웃음을 터뜨렸고, 일본을 제패한 바둑천재는 ’한국인이 사랑하는 바둑천재‘로 가깝게 다가왔다.

김성진 기자/withyj2@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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