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경찰청과 손해보험협회에 따르면 보복운전은 ‘고의로 자동차를 이용해 특정인에게 위협을 가하거나 공포심을 느끼게 하는 행위’로 명백히 고의에 의한 교통사고에 해당한다.
문제는 자동차손해배상법과 금융감독원의 자동차보험 표준약관에서 고의로 인한사고는 보험사가 보상하지 않도록 규정한다는 점이다. 보복운전으로 인한 교통사고의 경우 피해자가 가해자의 보험사에서 피해보상을 받지 못한다는 얘기다.
단, 피해자가 가해자의 보험사에 피해보상을 직접 청구하면 인적 피해의 일부를 보상받을 수 있다. 이 경우 피해자가 받는 보상은 ‘대인배상Ⅰ’으로 제한되고, 차량등 대물 피해는 한푼도 보상받을 수 없다.
인적피해에 대한 보험사의 보상은 ‘대인배상Ⅰ’과 ‘대인배상Ⅱ’로 나뉜다. 대인배상Ⅰ은 사망사고의 경우 최고 1억원, 상해는 부상 정도에 따라 최고 2000만원까지 보상한다.
사고로 인한 위자료나 상실 수익액 등을 포함하는 대인배상Ⅱ는 보상 한도가 정해져 있지 않다.
결국 대형 피해를 본 피해자가 인적·물적 피해를 온전히 보상받으려면 가해자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하는 수밖에 없다.
경찰이 보복운전을 근절하고자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폭처법)의 ‘흉기 등 협박죄’를 적용, 가해자가 징역 1년 이상의 무거운 처벌까지 받도록 했으나, 피해자가 오히려 손해를 보게 된 셈이다.
폭처법이 적용되기 전에는 보복운전이 ‘일반 교통사고’로 처리돼 피해자가 보험적용을 받는 데 문제가 없었다.
이런 문제점을 인식한 경찰청은 보복운전의 피해자가 보험처리되도록 금감원, 손해보험협회와 수차례 협의했으나 아직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금감원과 협회 측은 보험은 의도하지 않은 사고를 보상하기 위해 만든 것이라는 ‘우연성의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보험처리가 안 되는 것이 가해자에게 금전적인 부담을 무겁게 지운다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긴 하다.
보험처리가 안 되면 가해자는 온전히 자신의 돈으로 피해를 보상해줘야 하기 때문이다. 보험이 적용되면 피해보상은 보험사의 몫이 돼 가해자의 금전적인 부담은 보험료가 조금 오르는 것에 그친다.
다만, 피해자가 보상을 받기 위해서는 가해자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야 하는 등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는 만큼, 피해자 보상 규정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경찰청은 이에 따라 단순한 교통위반 사범을 폭처법으로 형사입건하지 말도록 일선 경찰서에 지시를 내렸다. 섣불리 보복운전으로 판단하지 말고 일단 일반 교통사고로 조사하되, 고의성을 명백히 입증할 증거가 있을 때만 보복운전으로 처리하라는 것이다.
피해자들에게는 범죄피해자 구조금, 자동차사고 피해가족 지원 등 다양한 피해보상 제도를 안내토록 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보복운전으로 입건되면 형량이 무겁기 때문에 처벌을 덜 받기위해 가해자들이 대부분 피해자와 합의를 본다”며 “이런 합의 과정에서 가해자로부터 피해 보상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청은 지난달 10일부터 한달간 보복운전 특별단속을 해 보복운전 273건의 가해자 280명을 입건하고 이중 3명을 구속했다.
gil@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