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에게 두 가지 길이 놓였지만 어떤 길을 택해도 타격은 불가피해 보입니다. 한 마디로 김 대표는 딜레마에 빠졌습니다.
김 대표 스스로 공언한 “오픈프라이머리(완전국민경선제)에 정치생명을 걸겠다”는 말을 주워 담을 수도 없으니 말의 무게가 이처럼 무거울 때도 없을 것입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2일 오전 서울 용산구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열린 ‘제19회 노인의 날’ 기념식에 참석한 뒤 기자들의 질의에 응답하고 있다. 박해묵 기자/mook@heraldcorp.com |
미국식 오픈프라이머리 도입을 의욕적으로 추진해 온 김 대표는 ‘안심번호 국민공천제’를 우회로 삼아 ‘국민에게 공천권을 돌려드리겠다’는 자신의 정치적 이상을 관철시키려 했습니다. 하지만 청와대와 친박계의 반발이 만만치 않습니다.
국민공천제를 끝까지 관철해 친박계와 일전을 감행하느냐, 친박계 요구대로 국민공천제를 포기하고 회귀하느냐. 하지만 둘 다 쉽지 않은 선택입니다.
우선 국민공천제를 계속 고집할 경우 반대 진영의 ‘김무성 흔들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입니다. “내가 있는 한 전략공천은 없다”는 김 대표의 입장은 내년 총선에서 ‘친위 체제’를 구축해 국정 동력을 확보하려는 친박계의 이해관계와 충돌합니다.
새누리당은 지난달 30일 의총에서 ‘특별기구’를 설치해 공천제도에 대한 논의를 이어가기로 했습니다. 출구를 열어두며 가까스로 정면충돌을 피한 것입니다. 하지만 김 대표 측과 친박계의 상반된 이해관계가 절충되지 않는 한 언제든 부딪치게 돼 있습니다.
그렇다고 김 대표가 정면돌파를 택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친박계와 전면전을 선택할 경우 새누리당은 내년 총선에서 박 대통령의 ‘콘크리트 지지층’ 30%를 잃을 수 있습니다. 더구나 박 대통령 국정운영 지지도는 50%대에 육박하며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또 총선이 눈앞의 고지라면 대선은 김 대표에게 최후의 목적지입니다. 김 대표가 독자적 기반이 취약한 상황에서 내년 ‘총선 룰’을 두고 친박계와 척지는 결정을 내리긴 어렵다는 분석입니다.
사실 김 대표는 지난해 7월 취임한 이래 상하이 개헌 발언, 여의도연구원장 인선, 유승민 전 원내대표 사퇴 등 주요 국면마다 청와대 앞에 허리를 굽혀 왔습니다. 김 대표가 청와대와 공방을 벌이다가도 더 이상 ‘확전’을 피하는 것도 이 같은 이유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김 대표도 국민공천제의 대전제만큼은 양보하기 어렵습니다. ‘공천권을 국민에게 돌려주겠다’는 원칙은 김 대표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정치 생명’이 걸린 문제입니다. 김 대표가 이번에도 무릎을 꿇고 스스로 정치적 명분을 포기할 경우 지지기반이 와해될 우려가 큽니다.
자신이 정치 생명을 걸겠다고 공언한 만큼 이를 뒤집을 경우 유력한 차기 대권주자로서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습니다. 또 되레 김 대표의 정치적 책임을 묻는 친박계 공세가 거세질 우려도 있습니다.
이에 김 대표는 ‘공천권을 국민에게 둘려주겠다’는 정치적 명분을 무기로 친박계의 압박에 굴하지 않는 것으로 풀이됩니다.
친박계는 여론전을 통해 국민공천제 불가론을 펴며 김 대표를 옥죄어 올 전망입니다. 향후 특별기구의 논의 과정도 순탄해 보이지 않습니다. 결국 어떤 식으로든 친박계가 김 대표의 국민공천제 구상을 무너뜨리고 김 대표를 무력화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우세합니다.
신율 명지대 정치학과 교수는 현 국면에 대해 “김 대표가 친박계의 요구를 받아들이며 위기를 넘긴다 해도 친박계는 어차피 또 ‘김무성 흔들기’에 나설 것”이라며 “김 대표가 대선후보로 남기 위해 언젠가 겪어야 할 일”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신 교수는 “김 대표가 친박계의 흔들기에 버틴다 해도 결국 현재권력을 등진 미래권력은 한명도 없다는 게 역설”이라며 김 대표가 처한 딜레마를 지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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