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상황은 맞선에서 만난 미래 남남북녀의 만남을 설정해 가상으로 구성해 본 내용이지만, 현실에서도 충분히 일어날 법한 상황이다.
569돌 한글날을 맞은 가운데 남북한의 언어는 분단 70년의 세월 동안 서로 다른 길을 걸어왔다.
이 시간 동안 사고, 문화, 생활방식, 어문정책, 경제 등 다각적인 면에서 단절과 차이를 겪었는데, 이것은 고스란히 각자의 언어에 스며들어 왔다.
양쪽 모두 19개 모음과 21개 자음인 한글(북한은 조선글자)을 사용하고 있지만 단어, 표기법, 문체, 어체 등 언어 교류 없이 70년이 흐르다 보다 어느새 상대의 언어가 외래어처럼 느껴지는 생경함이 더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실제로 남북한의 사전에 등록된 단어 중 한쪽에만 등재된 말이 절반을 넘어선 것으로 조사됐다.
겨레말큰사전 남북공동편찬사업회의 한용운 편찬실장이 최근 국립국어원에 제출한 ‘남과 북의 사전’이란 특별논문에 따르면 남측의 ‘표준국어대사전’에 수록된 총 43만7865개의 표제어 중 북한의 ‘조선말대사전’엔 없는 말이 22만8474개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남한 사전에 있는 말 52% 정도가 북한 사전엔 없는 것이다. 사전 표제어로만 본다면 북한 주민이 남한 사람이 하는 말 절반 이상을 알아듣지 못 할거란 얘기다.
표준대사전에만 있는 말 중엔 ‘군걱정(기우)’, ‘말맛(어감)’ 등 외래어를 한글로 순화한 것들도 있지만 대부분 ‘달동네’, ‘뜬잠’, ‘숯불갈비’ 등 남한 사회상이 반영돼 생겨난 용어들이다.
‘만화방’, ‘배낭여행’ 등 한자어나 ‘룸메이트’, ‘리더십’ 등과 같이 외래어가 직접 유입된 낱말도 북한 사전엔 없다.
반대로 조선말대사전의 총 표제어 수는 35만2943만개로, 이 가운데 표준대사전엔 없는 말은 13만8472개다.
전체 대비 약 39% 정도인데, 남한 역시 북한 주민이 하는 열 마디 중 네 마디 정도는 이해할 수 없다는 뜻이다.
이는 북한에서 한자말정리사업과 어휘말정화사업이 추진되면서 정책적으로 순화된 고유어가 많아진 영향이 크다.
한자어ㆍ 외래어를 순화시킨 ‘먼거리(원거리)’, ‘손기척(노크)’, ‘순간타격(스파이크)’, ‘범벅이말(외래어가 섞인 말)’, ‘뒷셈(정산)’, ‘찬단물(냉주스)’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한용운 실장은 “남북의 어휘 이질화는 오랜 기간 진행돼 온 것이고 차이가 사회 체제와 생활 방식에서 비롯된 것이 대부분이라 하루아침에 극복되진 않을 것”이라며 “독일처럼 체제 통일은 어느 날 갑자기 이뤄질 수 있겠지만, 언어 통일은 단번에 이뤄지지 않기에 어문 생활에서도 미리 통일 시대를 위한 준비 작업에 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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