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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팔 사건으로 본 검경(檢警) 헤게모니 싸움의 ‘민낯’
뉴스종합| 2015-10-15 13:00
[헤럴드경제=서경원 기자]‘경찰이 죽었다고 발표한 사람을 검찰이 수사를 하고, 경찰도 재수사에 착수한 상황.’

‘조희팔 사건’은 4만~5만명을 상대로 4조원 규모의 피해를 일으킨 희대의 사기극이지만, 수사 과정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검찰과 경찰 간의 사상 초유의 수사권 대립 과정을 고스란히 보여준다는 분석이다.

일각에선 경찰의 수사권 독립 문제를 둘러싼 검ㆍ경의 헤게모니 싸움이 조희팔 사건이 빨리 매듭지어지지 못하는 결정적 이유가 되고 있단 지적도 나온다. 


조희팔 사건은 20여개의 유사수신 업체를 차리고 의료기기 대여업 등으로 고수익을 내주겠다며 지난 2004년부터 4년간 수만명의 투자자를 끌어모아 3조5000억~4조원을 가로챈 사기 범행이다.

경찰은 2008년 10월 처음으로 조희팔 수배에 들어갔다.

하지만 그해 12월 밀항으로 중국에 도주한 조희팔을 놓치게 돼 국내에 있는 그의 일당 검거에 돌입한다.

동시에 중국 현지에 있는 조희팔 검거에 열을 올리던 경찰은 2012년 5월 갑작스레 그의 사망 소식을 발표해버린다.

당시 브리퍼는 지난해 청와대 문건 유출로 논란이 된 박관천 전 경정이었다.

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장이었던 그는 “조희팔이 중국 청도의 식당에서 가슴통증과 호흡곤란 증세를 보여 병원으로 옮기던 도중 숨졌다”고 밝히면서 이에 대한 증거로 응급진료기록부, 사망진단서, 화장증, 장례식 동영상 등을 제시했다.

하지만 중국 현지 의사가 작성한 사망진단서는 공식 입증자료라고 보기엔 조악하다는 평가가 나왔고, 더욱이 장례식장에서 입관돼 있는 시신을 동영상으로 촬영한다는 것 자체도 정서에 맞지 않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이에 경찰이 조희팔 수사에 착수한 검찰에 ‘찬물’을 끼얹기 위해 설익은 사망 발표를 했다는 관측도 나왔다.

실제로 당시는 대구지검 서부지청이 조희팔 사건의 핵심 공범 2명을 중국에서 소환해 수사하고 있던 때였다.

더욱이 그때 경찰청 수사기획관은 황운하 현 서울지방경찰청 생활안전부장(경무관)으로 그는 십수년 전부터 경찰 수사권 독립문제의 선봉장 역할을 맡아왔던 인물이다. 경찰 내에선 ‘검찰 저격수’로 불려왔다.

특히 ‘김광준 부장검사 뇌물 수사’로 양측은 정면충돌하게 된다.

김 전 검사는 조희팔의 오른팔인 강태용과 고교 동창으로 그의 금품 수수 정황을 포착한 경찰이 내사에 들어갔는데, 검찰이 이를 알아차리고 특임검사팀을 가동해 별도 수사를 벌이기 시작한 것이다.

사실상 경찰에게 손을 떼라는 신호였지만, 경찰은 법에 따라 수사를 개시했기 때문에 진행권이 보장돼야 한다며 물러서지 않았다.

또 검찰과 중복수사가 이뤄지면 한 사건의 동일 피의자가 두 수사기관에 불려다니는 등 인권침해 문제도 발생할 수 있다는 논리를 펼쳤다.

이에 검찰은 김 검사 사건은 경찰 내사였기 때문에 경찰의 정식 수사개시 보고가 이뤄진 뒤 송치 지휘를 통해 사건을 넘겨받는 것은 정당한 절차에 따른 것이라며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렇게 검찰과 경찰은 한동안 동시 수사를 펼쳤다.

당시 김 검사 사건을 맡았더 김수창 특임검사는 중복수사 논란에 대해 검찰과 경찰을 각각 의사와 간호사에 비유하면서 “수사문제에 있어선 검사가 경찰보다 더 법률전문가이고 증거판단이 낫기 때문에 수사지휘를 하는 것”이라고 발언해 경찰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그러다 황운하 당시 수사기획관은 그해 11월 경찰수사연수원장으로 전보 발령되면서 검경 대치가 일단락됐다.

김광준을 구속시킨 김수창 검사는 그후 승진가도를 달리며 제주지검장으로 발령이 났지만, 음란행위를 저지르면서 경찰의 정밀한 수사를 받게 되는데 항간엔 이를 두고 ‘경찰의 복수’를 받은 격이라는 소리도 나왔다.

이후 조희팔의 생존설이 지속 제기되는 가운데 은닉자금을 중심으로 검찰 수사가 진행됐는데, 이번에 그의 최측근인 강태용이 중국에서 검거돼 검찰이 조희팔 수사를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고 있다.

조희팔이 사망했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에 경찰은 겉으로 내색은 하지 않으면서도 상황을 유심히 지켜봤다.

조희팔이 생존해 있는 것으로 밝혀질 경우 국민적 망신은 물론 자존심에도 적잖은 타격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다 결국 경찰도 지난 14일 조희팔 특별수사팀을 꾸리고 나섰다.

조희팔에게 돈을 받은 비리 혐의자들을 재조사하겠다는 명목이지만, 검찰 수사에 가만있을 순 없는 노릇이기도 하다.

이에 강태용은 또 다시 검찰과 경찰을 오가며 조사를 받게 될 가능성이 커지게 됐다.

gil@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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