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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車 얼굴,그릴 전쟁]분할 그릴의 효시 ‘알파로메오’…1930년 '차별화' 서막
라이프| 2015-10-28 09:44
[헤럴드경제=정태일 기자]자동차 엔진의 열을 식히기 위해 그릴 디자인이 처음 나온 시기는 1903년으로 전해진다. 당시 그릴의 모습은 통으로 된 형태의 아치 모양이 주를 이뤘다. 하지만 주행 성능이 중요시되면서 아치 그릴은 엔진 가속에서 발생하는 열을 식히기에 한계가 있는 것으로 지적됐다.
그래서 나온 것이 지금 많이 쓰이는 분할(split)된 형태의 그릴 디자인이다. 효시는 1923년 이탈리아 자동차 기업 알파로메오의 스포츠카 ‘RL’이다. 알파로메오는 레이싱 능력을 높이기 위해 분할 그릴을 적용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1923년 최초로 분할 그릴 디자인을 도입한 알파로메오의 스포츠카 RL [출처=알파로메오 홈페이지]

이 때까지만 해도 자동차 그릴 디자인은 엔진의 열을 식히는 기술적 기능 위주로 제작됐다. 그러다 자동차 제작사들이 그릴 디자인에 미적 요소를 가미하기 시작한 시기는 1930~1940년대부터다. 자동차 기업들이 그릴 전쟁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시기를 이 때부터로 볼 수 있는 셈이다. 뷰익이나 쉐보레는 종 모양의 그릴을 선보였고, 캐딜락과 포드는 십자가 모양의 그릴을 디자인했다. 2차 세계 대전 이후 그릴 디자인은 또 한 번 격변기를 맞았는데 이전 길쭉하고 좁게 나왔던 그릴은 이후 짧아지고, 넓은 디자인으로 재탄생했다.

1960년대 이후 대륙별로 그릴 디자인이 갈렸다. 유럽에서는 스포츠카 붐이 일며 화려하고 세련된 그릴 디자인이 유행했고, 미국에서는 남성적인 머슬카가 인기를 끌며 강한 인상의 직사각형 그릴이 대세가 됐다.

자동차 기업들이 그릴 디자인으로 브랜드 정체성을 본격적으로 표현하기 시작한 시기는 2000년대에 들어서부터다. 아우디의 패밀리룩으로 자리잡은 사디리꼴 형태의 육각형 싱글프레임은 불과 10년 전인 2004년에 발표됐다.

현대ㆍ기아차의 패밀리룩이 정립된 기점 역시 2004년으로 볼 수 있다. 연구개발본부의 디자인부분이 현대디자인연구소와 기아디자인연구소로 분리되면서 브랜드 디자인 분리 역시 이 시기 시작됐다.

이에 따라 현대디자인구소는 2009년 자연과 예술을 하나로 묶은 디자인철학인 ‘플루이딕 스컬프쳐(Fluidic Sculpture)’라는 디자인 정체성전략을 수립했다. 플루이딕 스컬프쳐는 디자이너가 조형예술가처럼 자동차를 예술작품으로 완성한다는 의미이다. 현대차 전면 디자인의 핵심이 된 헥사고날 그릴도 여기서 비롯됐다.

기아차는 글로벌 시장에서 인지도가 낮은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직선의 단순화’라는 새로운 디자인 방향을 제시하고 2008년 6월 최초의 패밀리룩이 적용된 로체 이노베이션을 선보였다. 호랑이의 코와 입을 형상화한 라디에이터 그릴이 적용된 시기가 이 때부터다. 이는 이후 기아차가 새롭게 선보인 쏘울, K5, K7, 스포티지 등 모든 차량에 적용되며 기아차만의 ‘얼굴’이 됐다.

대표적인 장수 그릴 디자인은 BMW의 상징이 된 키드니 그릴이다. 이 디자인은 1931년 일(Ihle) 형제에 의해 2인승 로드스터에 최초로 도입됐다. 본격적으로는 1933년 베를린 모터쇼에서 신형 303시리즈에 부착됐다. 1950년대 키드니 그릴이 빠진 적이 있었지만, 당시 BMW사의 대주주였던 헤르베르트 콴트가 키드니 그릴을 계속 가져가겠다고 재천명하면서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killpas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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