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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 포럼-전혜경] ‘쌀 ’은 ‘살 ’이 아니다
헤럴드경제| 2015-12-10 11:41
얼마 전 일본에서 개최된 AARRO(아시아아프리카농촌재건기구) 국제회의에 참석했을 때의 일이다. 여성참석자 중 한 명이 궁금했는지 내게 나이를 물어왔다. 한참 동생뻘 되는 그 여성은 내 나이를 듣고는 “어떻게 그렇게 날씬하냐, 비결이 뭐냐”라며 깜짝 놀라했다. 그때 나는 “밥과 반찬을 골고루 잘 먹으면 된다”고 말해줬던 기억이 있다.  

최근 언론을 통해 비만 관련 기사를 접하게 되었다. 기사의 주요 골자는 “한 번에 무리해 살을 빼는 것보다 운동과 신체활동을 통해 에너지 소모를 늘리는 습관을 기르라”는 것이다. 지당한 말이다. 그런데 이 보도를 접하면서 아쉬웠던 점은 살을 빼기 위해 “매일 밥 한 공기 덜 먹고 1시간 이상 걸어라”라는 내용이었다. 물론 이해를 돕기 위해 밥을 예로 든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표현들이 자칫 잘못하면 국민들에게 ‘밥을 먹으면 살이 찐다’, ‘밥은 살을 찌게 하는 탄수화물 덩어리다’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키게 만들 수 있다. 그리고 때로는 ‘살과의 전쟁’이 ‘쌀(밥)과의 전쟁’으로 바뀌는 사태를 초래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정말 밥이 비만의 원인일까? 아니다. 쌀의 주성분인 전분은 우리 몸에 많은 양을 저장시키지 않고 에너지원으로 사용된다. 또 현미에는 다량의 식이섬유가 들어있어 쉽게 포만감을 느끼게 해주며, 밥은 쌀에 물만 부어 짓기 때문에 추가적인 칼로리 상승도 없다. 미국의 워싱턴대학 비만연구소 연구결과에 따르면 밥 위주의 식사가 다이어트와 비만 예방에 도움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더욱이 반찬 없이 맨밥만 먹는 사람은 거의 없다. 밥에 김치, 나물, 생선, 고기 등 다양한 반찬을 곁들여 먹는다. 이 때문에 밥 중심의 한국형 식생활은 탄수화물:단백질:지방의 칼로리 공급 비율이 약 65:15:20로 이상적인 수치에 가깝다. 이와 같은 한식 섭취는 심혈관질환이나 당뇨병과 같은 생활습관병의 위험요인을 개선하는데도 효과가 있는데, 농촌진흥청과 미국 농업연구청이 비아시안계 과체중 미국인을 대상으로 임상 실험한 결과에서도 확인된 바 있다. 오히려 비만은 서구화된 식생활, 지방식품의 과잉섭취, 군것질 등이 주요 원인이라는 지적이다. 

밥의 주원료인 쌀에는 탄수화물을 비롯해 단백질, 비타민, 무기질, 식이섬유 등 여러 가지 영양성분이 들어 있다. 그래서일까? 우리나라에서는 예전부터 ‘밥이 보약이다’, ‘밥심으로 산다’라는 말을 자주 해왔다. 그런데 요즘 우리 민족의 주식, 쌀이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보약으로서의 존재감은 사라진지 오래며, ‘밥심’으로 산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쌀 소비량은 계속 줄어든다. 이는 식생활의 서구화와 다양한 먹거리가 등장한 탓도 있겠지만, 그동안 밥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나 오해도 한 몫 거들지 않았나 생각한다. 쌀은 살이 아니다.

막연한 오해로 밥을 외면한다면 다이어트도 망치고 건강도 잃을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부터 잡곡 등을 섞은 맛있는 밥상을 차려보면 어떨까? 밥이야말로 우리 몸의 건강지킴이요, 귀중한 식생활 문화유산임이 수저를 들 때 마다 전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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