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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즘-정순식]원금보장과는 분명 다른 원금수준의 보장
헤럴드경제| 2016-01-28 11:02

#1. 금융위원회는 이달 이뤄진 신년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솔깃한 아이디어를 공개한다. 주택시장이 전세에서 월세로 전환하는 구조적 변화에 맞춰 임차인이 반환받은 전세보증금을 모아 투자풀을 조성, 운용 수익을 주기적으로 배당하는 ‘전세보증금 투자풀’ 안을 발표한다. 한 푼이라도 더 재산을 불려야 할 임차인들이 반환받은 전세보증금 목돈을 단기자금과 예금 위주로 비효율적으로운영하고 있어 목돈의 효율적 운용을 통해 주거비 부담을 완화하는 정책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금융위는 설명한다.

#2. 이달 중순 시중 은행의 한 PB센터가 전화 문의로 북새통을 이룬다. 홍콩H지수의 급락으로 ELS가 손실구간에 접어들었다는 보도가 연일 나오면서 불안해진 투자자들의 문의가 봇물을 이룬다. 은행을 통해 ELS에 가입한 이들 대부분은 50대 이상의 고령층. 저금리 시대 투자처를 찾지 못한 고령층이 과감히 퇴직금 등을 ELS에 투자하다 이제는 걱정으로 밤을 지새운다.

새해 금융권을 뜨겁게 장식한 이슈의 두 장면이다. 얼핏 전혀 무관한 사례들처럼 보이지만, 사실 두 장면에는 하나의 공통분모가 있다. 다름 아닌 투자자들에게 건네지는 달콤한 유혹. ‘원금 수준의 보장’이다.

서민들의 전 재산과도 같은 전세보증금을 운용하겠다는 정책을 고안한 금융위는 전세보증금 원본은 예금수준으로 안전하게 보호되도록 한다는 문구를 발표 자료에 담았다. 손실 발생에 대비해, 임차인이 위탁한 전세보증금 원본 보호 장치를 마련하겠다고 분명히 밝힌 금융위는 수익률은 시중 예금 금리보다는 높은 수익을 추구하겠다고 했다. 투자자에게 이 상품은 무위험, 고수익 상품처럼 들린다.

ELS 판매 창구도 비슷하다. 상품을 판매하며 금융기관들은 한결같이 ‘요즘 같은 저금리에 이런 상품 흔치 않다’ ‘좀처럼 원금 손실이 나긴 힘들다’며 주저하던 고객의 마음을 돌렸다. 자산 운용에 보수적일 수밖에 없는 고령층을 대거 ELS 시장으로 끌어들인 달콤한 유혹이었다.

하지만, 이들 모두 엄밀히 말해 원금을 보장한다 말하지 않았다. 원금 수준의 보장이라는 모호한 수사학을 동원했다.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니지만, 분명 듣는 이를 혼란스럽게 하기엔 충분하다.

세상에 절대 공짜 점심은 없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은 투자의 기본 상식으로 통한다. ‘제로 리스크 하이 리턴’은 결코 성립할 수 없는 명제다.

이런 기본 상식을 무시한 결과 ELS는 현재 많은 투자자들을 걱정과 근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경제 여건에서 금융위의 전세보증금 투자풀도 훗날 손실분을 보전하기 위한 세금 투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전세난으로 고생하는 서민을 위한 애민의 심정. 저금리 기조 속에 한 푼이라도 더 자산 증식의 기쁨을 안겨주고 싶은 판매자의 입장. 그들의 선한 의도를 탓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하지만, 설익은 정책, 무리한 실적주의가 가져올 부작용은 상상 이상일 수 있다. 우리 모두 과거 어느 때보다도 불확실성이 커진금융시장을 겪고 있다. 지금은 번뜩이는 아이디어보다 기본 상식이 더욱 중요할 때다.

su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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