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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없는 長학생①] “대학생활 길게는 10년…갈 데도 없어요” 학교 못떠나는 졸업생
뉴스종합| 2016-03-10 09:00
자소서 쓰다 작가된 화석선배
도서관 구석자리 잡고 오늘 또 자소서
그러나 돌아오는건 낙방의 쓴잔 뿐



[헤럴드경제=신동윤 기자] 05학번 이모(30)씨는 올해로 12년째 학교에 나가고 있다. 지난 2011년 졸업했지만, 이후 매일 학교 도서관에 들어가 취업에 도움이 되는 자격증 공부와 기업별 업무적성검사 공부를 하고 있다.

졸업유예를 신청한 뒤 단과대학 도서관 한켠에서 자격증 공부를 하고 있는 고학번 대학생의 모습. 신동윤 기자/realbighead@heraldcorp.com

5년차 취업준비생 이씨는 그동안 대기업 수십곳에 원서를 썼지만 서류전형부터 최종면접까지 낙방 경험만 쌓았다. 이씨는 “학교에서 후배들이 인사하면 정말 민망하다”며 “지금껏 대기업만 골라 지원했지만 올해 상반기부터는 중견ㆍ중소기업까지 눈높이를 낮춰 얼른 학교를 탈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졸업유예생 김모(27)씨는 3년째 취업를 하고 있다. 스스로를 문송(문과라서 죄송)한 사람이라 부르는 김씨는 취업에 불리하다고 하는 국어국문학과 출신이다. 김씨는 각종 채용 전형에서 고배를 마셨다. 학교 도서관에서 하루종일 살다시피하며 증권과 금융 관련 자격증을 땄고, 3점대 후반의 나쁘지 않은 학점을 보유한 김씨지만 서류 전형 통과조차 어렵다. 그는 “경영ㆍ경제 관련 전공이 아니라 이런 결과를 얻었다”며 “학교에서 머무는 시간이 더 길어질 것 같다”고 했다.

새 학기가 시작된 3월 초 한 대학 캠퍼스. 모두가 강의실로 향하는 시간이지만 검은 패딩에 헐렁한 트레이닝복을 입은 한 무리의 학생들은 도서관 열람실 구석 자리에서 두꺼운 책을 들여다보며 공부를 하고 있었다. 이들은 일명 ‘화석선배’로 불리는 고학번 재학생 또는 졸업생들이다.

기업들이 채용 시 졸업생보다 재학생을 선호한다는 소문 때문에 최대한 휴학을 하며 졸업을 늦추는 학생들이 늘다보니 여학생의 경우 6년, 남학생의 경우 군생활까지 8년간 대학을 다니는 것은 이제 특별하지 않다는 것이 대학가의 정설이다. 최근 불어닥친 고용난으로 졸업유예생은 물론 졸업생들까지 학교에 머무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서울시내 4년제 대학교 졸업생 장모(28)씨는 “누가 뭐라고 하는 건 아니지만, 파릇파릇한 저학년들이 중앙도서관에 있으면 나도 모르게 자리를 비켜줘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며 “사람이 없는 단과대학 독서실에 짐을 풀고 눈치보지 않고 공부하는 게 습관이 된 나 같은 ‘화석선배’들도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눈치밥에 이어 더해진 경제적 압박은 학교를 떠나지 못하는 화석선배들의 마음을 더 아프게 하고 있다. 현재 서울대와 고려대, 연세대는 졸업생을 대상으로 1년에 10만원의 도서관 이용비용을 받고 있으며, 성균관대와 중앙대는 5만원을 받고 있다. 이화여대 역시 졸업생이 도서관 자료를 이용하려면 가입비 3만원에 예치금 15만원을 내야만 한다.

그 어떤 조건보다 이들을 우울하게 하는 것은 취업문이 갈수록 좁아진다는 소식이다.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국내 매출액 상위 500대 기업 중 조사에 응한 240개사를 대상으로 ‘2016년 상반기 4년대졸 정규 신입직 채용계획’에 대해 조사한 결과 대졸 신규 공채를 진행하는 기업은 35.8%에 그쳤다.

대학교 도서관 구석자리에선 취업을 위한 자격증 공부에 필요한 책을 쌓아둔 '화석선배'들의 흔적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신동윤 기자/realbighead@heraldcorp.com

대졸 정규 신입직 채용 자체가 없는 기업도 전체의 46.7%에 이르렀다. 2016년 상반기 대졸 정규 신입직 채용을 실시하는 86개 기업들의 채용인원은 총 9403명으로 지난해 총 9878명보다 4.8% 감소했다. 특히 모든 취업준비생의 로망으로 불리는 삼성그룹 공채 규모의 경우 지난해에 비해 소폭 감소할 것으로 전해지며 취업준비생의 시름도 깊어지고 있다.

학교를 떠나선 각종 취업 정보를 학교만큼 쉽게 얻지 못한다는 점도 졸업생이 떠나지 못하는 주요 이유다. 서울시내 한 대학 취업 담당자는 “최근 들어 05학번과 같은 고학번 졸업생들까지도 취업 준비를 하는데 도움을 부탁하는 경우가 늘어나는 추세”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연세대 장학취업팀 관계자는 “재학생 뿐만 아니라 취업준비장수생, 졸업생들까지 각종 기업 관련 강의와 설명회, 박람회 등에 참여하고 있다. 지난 2일 열린 한 대기업의 채용설명회에서도 250명 수용 강당에 300명이 훌쩍 넘는 학생이 왔다”고 했다.

realbighead@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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