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은 ‘약한 김무성’이 화를 불렀다. 야당은 ‘강한 김종인’이 문제였다. 원칙이 무너지니 당의 중심에 있는 개인에 따라 공천이 좌지우지됐다. 새누리당에선 김무성<캐리커처 왼쪽> 대표의 실권(失權)으로 계파간 균형이 붕괴됐다. 결과는 공천에서 ‘친박’(親박근혜계)이 사실상 무소불위의 권한을 행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더불어민주당에선 김종인<오른쪽>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에 당권이 지나치게 집중된 게 화근이었다. 지역구 공천에선 ‘친노 패권주의 청산’이라는 명분으로 어렵사리 봉합돼오던 당내 갈등이 결국 비례대표 공천 결과를 두고 터졌다. 김종인 대표가 전권을 가진 상황에서 스스로에게 비례대표 ‘2번’을 주고, ‘논란의 인사’를 전진배치시킨 것이 당내 반발을 불러왔다.
여권 안팎에선 새누리당의 이번 공천이 ‘역대 최악’이라는 비판이 적지 않다. 18대와 19대에 이어진 공천 파동에서 두번이나 탈락했던 김무성 대표는 당대표 선거 때부터 ‘국민공천제’와 ‘상향식 공천’을 내세웠지만 친박계 이한구 의원이 공천관리위원장을 맡으면서 무력화됐다. 새누리당이 20일까지 확정한 253개의 선거구 중 249곳의 공천 방식 중 경선은 57%인 141곳에 불과하고 단수(96)ㆍ우선(12)추천 지역이 총 43%인 108곳이다. 단수추천에 대한 김무성 대표의 이의제기는 무시됐다. 이번 공천의 최대 관심사인 유승민 의원의 공천 여부는 21일 오전까지 결론내지 못했다.
지금까지 김무성 대표 측근(친김무성계)을 제외하고는 친유(친유승민)와 ‘친이’를 포함해 범비박계 현역의원이 대거 공천배제됐다. 대구와 서울 일부 경선 지역에선 ‘진박’ ‘친박’ 의원이 역풍을 맞아 탈락했다. 최고위원들은 불출마 선언 사례를 제외하고는 사실상 전원 공천됐다. 김무성 대표의 방임과 침묵 속에 친박의 ‘전횡’과 당지도부의 기득권 보장이 어우러진 결과다. 역풍은 일부 지역에서의 진박 후보들의 탈락과 새누리당 지지율 하락으로 나타나고 있다.
문재인 전 대표가 영입해 선거대책위원회와 비상대책위원회를 모두 맡게 된 김종인 대표는 거침없는 행보로 안보에선 보수, 경제에선 민주화 노선을 천명하며 당을 빠르게 안정시켰다. 하지만 공천에서 전권을 휘두르다 끝내 비례 명단에서 당내 반발에 부딪쳤다. 20일 중앙위원회가 비례대표 선정 방식과 명단에 대해 공개적인 반대를 했고, 김종인 대표는 “중앙위 마음대로 하고 책임져라”라고 대응했다. 김종인 대표는 21일 비대위에 불참했다. 공천 후폭풍으로 여당에 이어 야당에서도 당대표 없이 비대위가 열리고, 중앙위가 당대표와 대립하는 파행을 맞게 된 것이다.
이형석 기자/suk@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