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2년 일제강점기, 일본으로 유학을 떠난 윤동주(1917~1945) 시인은 낯선 나라의 비좁은 방안에 홀로 웅크려 괴로워한다. 참혹한 시대에 시인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던 감정은 분노도 원한도 아닌 ‘부끄러움’이었다. 얼굴을 붉게 만들던 감정들을 시어(詩語) 안에 꾹꾹 눌러 담으며 가슴 속으로 삭이고 또 삭이던 그다. 그렇게 ‘쉽게 씌어진 시(1942)’가 세상에 나온다.
올해 윤동주 시인의 타계 71주기, 내년 탄생 100주년을 맞아 ‘동주 열풍’이 불고 있다. 윤동주의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초판본이 전체 베스트셀러 3위에 오르고(교보문고 3월 16~22일 기준), 시인의 일대기를 흑백 감성으로 담아낸 저예산 영화 ‘동주’는 손익분기점(60만 명)의 약 2배인 112만 관객을 모으며 흥행몰이 중이다. 이 같은 흐름에 공연계가 빠질 수 없다. 윤동주를 소재로 한 뮤지컬, 연극, 콘서트가 잇따라 무대에 올랐다.
먼저 서울예술단의 창작가무극 ‘윤동주, 달을 쏘다’가 3년 만에 재공연됐다. 2012년 초연 당시 객석점유율 93%, 이듬해 재공연에서 94%를 차지한 작품은 이번 공연에서도 95%를 넘어서는 등 관객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윤동주의 삶을 노래와 춤으로 표현한 극은 자신을 부끄럽게 하는 달을 향해 무사의 마음으로 화살을 쏘겠다는, 즉 시를 쓰겠다는 시인의 결연한 의지를 감동적으로 그려냈다.
`윤동주, 달을 쏘다`[사진=서울예술단] |
윤동주의 대표작 중 하나인 ‘자화상(1939)’을 무대로 옮긴 동명의 연극도 공연 중이다. ‘자화상’ 속 사나이가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모습을 뭉클하게 표현한다. 이외에도 시인의 육촌인 가수 윤형주가 최근 전남 광양에서 추모 콘서트를 열어 500여 관객에게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시집, 영화, 공연 속 윤동주는 정의로움과 인간다움을 상실한 시대 앞에서 끊임없이 부끄러워한다. 오늘날 윤동주의 시 바람이 다시 불어오는 까닭은 부끄러움 잊은 채 살아왔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는 일제강점기를 벗어나 눈부신 산업발전을 거두며 세계 경제대국의 반열에 올랐지만 그 사이 정의로움, 인간다움 같은 가치는 잃어버렸는지 모른다. 매일같이 뉴스에 나오는 결코 아름답지 않은 사건사고들이 그것을 증명한다.
끝없이 자아를 성찰했던 윤동주는 많은 것을 얻는 동안 어떤 것을 놓아버리게 되었는지 찬찬히 살피라고 이야기하는 듯하다. ‘쉽게 씌어진 시’의 마지막처럼, 부끄러움을 아는 인간만이 부끄러움을 잊은 시대 앞에 당당히 나설 수 있다고 말이다.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뉴스컬처=양승희 편집장/yang@newsculture.t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