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경제
흉기에 화학물질에…상처투성이 ‘민중의 지팡이’
뉴스종합| 2016-04-05 11:25
서울 관악경찰서에서 30대 여성 민원인이 “믿었던 형사가 내 편을 들어주지 않는다”며 황산을 경찰 얼굴에 뿌린 사건이 벌어지면서 또다시 경찰에 대한 무차별적 공격이 도마 위에 올랐다. 치안 일선에서 선 경찰에 대한 공격은 시민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행위다. 그러나 당사자인 경찰관들은 까다롭고 모호한 복무 규정 때문에 물리적 대응을 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지난해 5월 중순 울산 중구 복산동 주택가 골목길에서 이집 저집 기웃거리는 김모(37) 씨를 수상히 여긴 경찰관은 김씨에게 신분증을 요구했다. 당시 해당 경찰관은 인근 빌라에서 빈집털이 범죄가 50차례나 일어난 사건을 조사 중이었다. 그 순간 김 씨는 품 안에 숨겨뒀던 칼을 꺼내 휘둘렀다. 격투 끝에 김 씨는 붙잡혔지만 경찰관은 왼쪽 눈썹과 어깨, 발목이 각각 2~3㎝ 베여 병원 응급실에서 상처를 꿰매야 했다. 

시민들의 안전을 책임지고 있는 경찰이 스스로의 안전은 담보하지 못하고 무차별적 공격에 노출되고 있다. 지난 4일 서울 관악경찰서 사이버범죄수사팀에서 민원인 전모(37ㆍ여) 씨가 형사에게 황산을 뿌린 현장. 정희조 기자/checho@heraldcorp.com

김 씨는 결국 특수공무방해치상 혐의로 구속됐다. 특수공무방해치상은 위험한 물건을 사용하거나 단체 또는 여러 사람의 힘으로 공무의 집행을 방해했을 경우 징역 5년 이하 또는 벌금 1000만원 이하에 처하는 중대한 범죄다.

최근 3년간 공무집행사범 검거현황을 살펴보면 2013년 1만2407명이었던 공부집행방해 사범 검거인원은 2014년 1만5142명으로 늘어났다가 작년 1만4551명으로 다소 줄어들었다. 그러나 특수공무집행방해사범은 2013년 311명에서 2015년 665명으로 두배 이상 늘었고 결과적으로 경찰관을 부상시킨 특수공무방해치상사범은 2013년 227명에서 2015년 261명으로 증가했다. 그만큼 경찰관에 대한 공격의 수단이 흉포화되고 극단화됐다는 얘기다.

일선 지구대나 형사과에서 일하는 경찰관들은 민원인과 범죄자들을 상대하는 과정에서 겪는 고충을 털어놨다. 이태원 등 유흥구역이 있어 강력범죄가 잦은 용산경찰서의 한 형사는 “용의자든 피의자든 형이 확정되기 전까지는 무죄추정의 원칙이 적용되기 때문에 난동을 부린다고 해서 함부로 수갑을 채우거나 제압할 경우 나중에 과잉 수사라고 민원이 제기된다”며 “현행범이더라도 단 둘이 마주쳤을 경우 난동을 부려서 제압했다는 것을 밝혀줄 증인이 없어 차라리 내 몸부터 챙길까 고민할 때도 많다”고 했다. 

용의자가 식칼 등 무기를 소지한 것으로 생각되더라도 경찰관은 쉽게 지급된 총기를 사용하기 힘든 것도 문제. 경찰관직무집행법 제10조 4항에 의하면 경찰관은 자기 또는 타인의 생명ㆍ신체에 대한 방호, 공무집행에 대한 저항을 억제하기 위해 필요한 한도 내에서 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고 규정돼 있다. 그러나 무기를 사용하지 않고서는 체포할 수 없다는 점이 확실하거나 3회 이상 경고에도 불구하고 상대가 흉기를 버리지 않을 때에만 총기나 도검 등 위해를 가할 수 있는 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 법원의 판례.

일선의 한 경찰관은 “일단 총기를 쏘고 나면 상황이 어찌됐든 이유를 소명하기 위해 감찰 조사를 받아야 한다”면서 “공포탄을 쏴도 사람이 죽을 수 있고 민간인의 허벅지라도 스치면 이후에 민사 소송에 몇년 시달리다 수천만원 배상해야 하는 경우도 많아 차라리 현장에서 범인을 놔주고 추후에 폐쇄회로(CC)TV 수사를 통해 잡아들이는 게 나은 형편“이라고 했다.

원호연 기자/why37@heraldcorp.com
랭킹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