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경제
[김현경의 맘다방]“제가 우리 아이를…”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의 절규
뉴스종합| 2016-04-26 10:12
[헤럴드경제=김현경 기자] “제가 우리 아이를…”.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인 원모 씨는 지난 2009년 아이를 잃었습니다. 아이가 기침을 해서 병원에 갔지만 숨 소리가 깨끗하다고 약만 처방 받아 먹었는데 계속 낫지 않아 큰 병원으로 옮겨 다닌 지 6개월 만이었습니다. 사인은 원인 미상 폐손상. 영문도 모르고 아이를 떠나 보내야 했던 원씨는 2011년 뉴스를 보고서야 가습기 살균제가 원인이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또 다른 피해자 안모 씨는 가습기 살균제 때문에 임신 중이던 아내와 태아를 잃었습니다. 첫째 아이도 폐질환에 걸렸습니다. 안씨가 사용한 가습기 살균제는 유럽에서 살균제 원료를 수입해 인터넷으로만 판매한 ‘세퓨 가습기 살균제’였습니다. 사용자 중 치사율이 34%가 넘었지만 이를 수입해 판매한 회사는 사건 후 폐업해 피해자들은 항의할 곳도 없었습니다.


사진=환경보건시민센터

최근 가습기 살균제 사망 사건이 재조명되고 있습니다. 검찰이 사건 발생 5년 만에 특별수사팀을 꾸리고 본격적인 수사에 나섰기 때문입니다.

환경보건시민센터에 따르면 지난 4일까지 신고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1528명 중 사망자는 239명에 달합니다. 2014~2015년 정부가 조사한 1~2차 피해자 중 공식 집계된 사망자가 146명, 2015년 접수돼 현재 조사 중인 3차 피해자 중 사망자가 79명, 올해 들어 센터로 접수된 사망자가 14명입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중에는 특히 임산부와 영유아가 많습니다. 공식 집계된 사망자 중 절반 이상은 영유아였습니다. 아기가 있는 집에서 습도를 조절하기 위해 가습기를 많이 사용하고, 혹시 세균이나 곰팡이라도 생기지 않을까 걱정하며 조금이라도 더 깨끗한 공기를 만들어 주기 위해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했던 겁니다.

아이에게 좀더 나은 환경을 만들어 주려는 정성스런 마음으로 사용했던 가습기 살균제가 자신도 모르는 새 아이를 죽음으로 몰고 가고 있었다는 것을 한참 후에야 알게 된 부모의 마음은 얼마나 무너졌을까요. 잘못은 가습기 살균제를 만든 기업에 있지만, 부모라서 아이에게 미안하고 자책하는 마음이 어땠을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슬픕니다.

지난 5년간 가습기 살균제의 피해자만 있고 가해자는 없었습니다. 가해자는 가습기 살균제를 만들고 독성을 알면서도 판매한 기업, 대응이 늦었던 정부, 연구 윤리를 저버린 교수들인데 이들이 숨어있는 동안 피해자들이 오히려 스스로를 탓하고 괴로운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늦게라도 수사가 시작된 건 다행이지만, 최대 가해 기업인 옥시레킷벤키저가 아직도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오염된 가습기나 황사 때문에 폐손상이 생겼을 수 있다”는 황당한 주장을 하는 것을 보면 갈 길이 멀어 보입니다. 부디 제대로 된 수사와 처벌로 피해자들이 더 이상 억울한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pin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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