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경제
‘석유권력’ 제패했던 사우디, 금융권력 노린다
뉴스종합| 2016-04-26 14:31
[헤럴드경제=문재연 기자] 한때 세계 자원시장을 제패했던 사우디아라비아의 ‘석유권력’이 휴지조각이 됐다. 초저유가의 장기화와 석유수출기구(OPEC)가입국의 감산 합의 실패가 잇따르면서 사우디가 세계금융시장 진입을 위한 속도를 높이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왕위계승 서열 2위이자 실세인 모하마드 빈 살만 알 사우드 부왕세자는 25일(현지시간) 석유 이후의 ‘포스트 오일’ 시대를 이끌기 위한 주요 경제개혁안을 공개했다. 개혁안에는 국영 석유회사인 아람코의 지분 5%를 기업공개(IPO)로 일반 주주들에게 매각해 2조 달러(약 2296조 원) 규모의 국부펀드를 조성하는 방안도 포함돼 있다. 사우디에 ‘절대권력’을 부여한 석유 수출사업과는 거리를 두고 세계금융시장에서의 영향력을 높이기 위한 산업개편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자료=게티이미지]

세계 금융시장에 진입하기 위한 사우디의 움직임은 셰일가스 혁명과 석유시장의 금융화가 제기된 2007년 시작됐다. 세계 금융위기 직전인 그 해에 사우디는 금융센터로서 키우기 위해 ‘킹 압둘라’ 금융단지를 수도 리야드에 건설하겠다고 밝혔다. 당시 금융단지의 정보기술 책임자 칼리드 알아르파이는 홍보용 비디오에서 “세계 10대 금융권으로 거듭나는 것이 우리의 비전”이라고 강조했다. 이후 사우디는 2008년 8월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스왑계약 형태로 자국 상장주식을 매입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당시 중동권 최대 규모인 사우디증권거래소(타다울)에서는 외국인 투자자들의 매입이 불가했다. 사우디는 이때 처음으로 외국인의 간접투자를 허용하고 7년 뒤인 지난해 6월 최소 50억 달러의 운용자산을 보유하고 최저 5년의 영업경험이 있는 금융법인에 직접투자를 허용했다.

25일 공개된 경제개혁안은 해외투자자들의 이목을 사로잡기 위한 조치인 것으로 보인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사우디가 대대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킹압둘라 금융단지의 공사는 유가 폭락으로 사우디 재정상황이 악화되면서 중단됐다. 금융단지의 공사는 현재 70% 완료된 것으로 전해졌다. 킹압둘라의 주요 투자사인 사우디 국민연금 관리기관(PPA)는 건설사 빈라덴 그룹과 프로젝트 매니저 알 라야드 측에 “두 달 내로 공사를 재개하지 않으면 계약을 해지하겠다”고 압박한 상태다. 지난 20일에는 25년 만에 처음으로 국제 금융시장에서 100달러 규모의 채권을 발행하겠다고 발표했다.

사우디의 지난해 재정적자 규모는 114조 원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저유가가 장기화할 조짐을 보이면서 사우디 왕가는 국가 경제의 장기적인 안정을 위해서라도 비(非)석유 부문의 수익을 높일 방침이다.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사우디는 비석유 부문의 수익을 1630억 리얄(SAR)에서 2030년까지 1조 SAR(약 306조 원)까지 끌어올릴 방침이라고 전했다.

모하마드 부왕세자는 “우리는 석유에 중독돼 있다. 이는 위험하다”면서 “이는 다른 부문의 개발을 지연시켰다”고 지적했다. ‘미스터 오일’이라 불리는 알리알나이미 사우디 석유장관도 지난 3월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에너지시장 컨퍼런스에서 “사우디아라비아만큼 친환경에너지를 개발할 수 있는 최상의 조건을 갖춘 나라도 없다”고 자평했다.

한편, 사우디의 국제금융시장 진입이 순탄하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블룸버그는 IPO에 나선 아람코가 공식적인 재무제표를 발표하지 않는 ‘지구상에서 가장 비밀스러운 회사 중 하나’라고 비판했다. 국제금융센터는 사우디가 2조 달러 규모의 국부펀드를 마련해도 비유동자산 비중이 높고 해외투자 비중이 낮아 국내증시로 자금이 유입될 수 있는 규모는 2~5조 원에 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munja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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