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경제
[푸마 이그나이트 서울 2016] 2km 지점서 다리 풀리고 숨이 헉헉…“내 몸에 무슨일이?”
뉴스종합| 2016-05-15 18:02
-본지 이원율 기자, 직접 마라톤 해보니

-빗속 너무 힘들고 다리도 점점 저려와

-1만명 레이서와 도심 속 뛰니 기쁨 2배



[헤럴드경제=이원율 기자]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강원도 전방에서 밥먹듯 행군을 했던 때가 불과 4년 전이었다. 그 사이 몸에 무슨 일이든 일어난 게 분명했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거리를 확인해보니 이제 2km. 나도 모르게 깊은 탄식이 흘러나왔다.

15일 서울 마포구 홍대 주차장 거리. 푸마가 주최하고 (주)헤럴드와 서울시가 후원한 ‘푸마 이그나이트 서울(IGNITE SEOUL) 2016’ 10km 마라톤을 달려봤다. 오후 2시께부터 비가 쏟아지던 현장엔 푸마 로고가 박힌 붉은 티셔츠를 입은 1만여명의 우비군단으로 가득했다. 이들과 함께 하니 ‘이그나이트(ignite)’란 말 그대로 달리기 열정에 불이 붙었다. 허구한 날 40km 행군을 했던 2010년 강원도 양구에서 군 생활을 떠올리며 ‘10km 쯤이야’라고 자만했다.

오후 4시. 설렘을 가라앉히며 참가자들과 함께 전문 트레이너가 진행하는 스트레칭 지도를 받았다. ‘두둑’ 거리며 몇 년간 잠들어있던 근육의 놀란 소리가 들렸다. 주위를 둘러보니 전문가 수준 장비로 무장한 마라토너, 마주보며 스트레칭 자세를 교정하는 연인, 손 맞잡고 출발을 기다리고 있는 부자(父子) 등 각양각색 참가자들이 출발 신호를 준비하고 있었다.

‘좋아! 가는 거야’

MC 노홍철의 진행으로 흥이 난 참가자들은 5시 출발 신호에 따라 질주를 시작했다. 10km 기록경신을 목표로 하는 A그룹, 가족 등 즐기기 위한 러너들로 구성된 B그룹이 나선 후 ‘초보자’ C그룹과 함께 출발선에 올랐다. 레이스는 홍대에서 한강시민공원을 지나 여의도공원까지 10km 거리로 이어졌다. 1시간 30분 내외인 공식 러닝타임은 초보자들에겐 그리 만만치 않아보였다.

힘차게 달리며 상수역과 광흥창역을 지나는 동안 시원한 오후 바람이 비와 함께 두 뺨을 스쳤다. 탁 트인 한강이 보이는 서강대교 남단을 지날 때 참가자들은 “우와!”, “저기 봐!” 하며 소리쳤다. 몇몇은 속도를 줄이며 한강 풍경을 감상했다. ‘찰칵’하는 카메라 플래시 소리도 종종 들렸다. 약 2km 지점, 여기까지는 모두가 힘이 넘쳐 ‘여유롭게 웃는’ 레이스였다.
<사진설명>본지 이원율 기자(왼쪽 두번째)가 수많은 참가자들과 함께 직접 푸마 이그나이트 레이스에서 뛰고 있다.

다리를 지나고부터 본격적으로 오르막과 내리막 코스가 반복될 때 참가자들의 표정은 점차 굳어갔다. 지금 위치를 본 참가자 몇몇은 “아직 여기까지밖에 안 왔어?”하며 멈춰 서서 호흡을 골랐다. 숨이 턱까지 차오른 듯 “아이고 다리야”하며 앓는 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너무 긴장한 탓일까. 점차 머리가 뒤로 넘어가고 다리는 풀렸다. 평소 ‘운동’이 취미고 ‘달리기’가 특기라 자신했었는데 벌써 위기가 오다니…. 처음엔 빗 속 질주가 부담이 없었는데, 여기서부터는 비가 부담이 됐다. 땀인지 빗물인지 얼굴에 흘러 넘쳤다.

“이제 절반 왔고 뛴 거리만큼만 돌아가면 돼요.”

한 참가자 말을 흘려들으며 다시 마음을 잡았을 때쯤 ‘이그나이트’ 마라톤의 장점이 빛을 발했다. 늦은 오후 시작하는 마라톤이라 시간이 갈수록 공기가 시원해져 상쾌함을 더해주기 때문이다. 점차 ‘뜨거워지는’ 오전 마라톤과는 다른 점이다. 6~8Km 지점, 레이스 누적시간은 점차 늘어나고 있었다. 하지만 참가자들 표정엔 오히려 이전엔 없던 유쾌함이 가득했다. 한강 시민공원을 지날 땐 가슴 뻥 뚫리는 청량한 꽃과 나무의 향기들이 비 냄새와 함께 코를 스쳤다.

결승선을 앞둔 마지막 지점. 종아리까지 덮쳐온 통증을 참으며 느릿느릿 오르막길을 지나고 있을 때 “기록은 별거고 끝까지 뛰는 게 제일 중요하지”라며 함께 참가한 연인을 응원하는 참가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뛰는 사람보다 걷는 사람이 많아지는 시점에 이들은 아른거리는 ‘피니시 라인’을 보고 탄성을 질렀다. 기록 욕심 없을 것 같던 이들도 마지막 300m를 앞두곤 있는 힘을 짜내 내달렸다. 바로 앞 놓여있는 ‘완주’라는 쾌감을 조금이라도 빨리 느끼고 싶어 하는 듯했다.

레이스 참가자 대부분은 차질없이 피니시 라인을 통과했다. 여의도 공원에 도착한 ‘완주자’들은 함께 모여 기념사진을 찍고 완주 기록을 보며 손뼉치며 환호했다. 이들에 ‘이그나이트’된 달리기 열정은 여전히 뜨거웠다. ‘애프터 파티’로 싸이가 와 공연을 시작했을 땐 과연 10km를 완주한 사람들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종아리 통증을 잊고 함께 발을 굴렀다.

이번 푸마 이그나이트의 슬로건은 ‘달리는 난, 어제와는 달라’. 열정적인 마라톤을 한껏 즐긴 오늘, 종일 노트북만 두들겼던 어제와는 다른 많은 감정을 느꼈다. 특히 늦은 오후, 이름도 모르는 1만여명과 만나 같은 목표를 두고 모두 함께 이뤄냈다는 것에 대한 ‘보람’. 함께 한 많은 사람과 함께 내년 일정만 다시 기다리게 됐다.

yul@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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