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형 현대자동차 아트디렉터, 내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예술감독 선정
[헤럴드경제= 김아미 기자] 이대형(42) 현대자동차 아트디렉터는 ‘학예사’ 자격증이 없는 큐레이터다. 유명 대학의 미술관련 학위, 자격증 같은 것들이 ‘신분’을 말해주는 한국 미술계에서 이대형 씨는 ‘이단아’ 같은 존재다.
아트페어 기획이나 미술 전시, 기업의 아트 컨설팅 등을 전문적으로 해 온 이 씨는 2013년 8월부터 현대자동차에서 아트디렉터로 일하고 있다. 글로벌 문화마케팅에 큰 돈을 들이고 있는 현대자동차가 제조업체로는 이례적으로 미술 전문가를 영입한 것. ‘양복입은 아트디렉터’ 이대형 차장은 현대차의 문화마케팅 사업 중에서도 핵심에 해당하는 현대미술 프로젝트들을 이끌며 한 해 국공립 미술관보다 더 많은 예산을 움직이고 있다.
내년 베니스비엔날레 예술감독을 맡은 이대형 현대자동차 아트디렉터가 서울 강남구 도산대로에 위치한 현대모터스튜디오 1층 전시관에서 포즈를 취했다. [사진=윤병찬 기자/yoon4698@heraldcorp.com] |
이대형 씨가 내년에 열릴 ‘제57회 베니스비엔날레’의 한국관 예술감독에 선정됐다. 그동안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위원장 박명진ㆍ이하 예술위)가 선정한 커미셔너가 예술감독을 겸하는 것이 보통이었지만, 내년부터는 예술위가 직접 커미셔너를 맡고 예술감독을 따로 둔다. 이 씨는 이완, 코디최 작가와 함께 한국관을 꾸밀 예정이다.
미술계에서 이 씨는 “의리있는 사람”이라는 평을 받는다. 그러나 세계 미술계의 담론을 이끄는 권위있는 미술전에 그가 선정된 것을 두고 의외라는 반응도 많다. 무엇보다도 자본의 최정점에 있는 기업의 아트디렉터이기 때문이다.
예술위 선정위원회는 “한국적이면서 세계적인 면을 함께 엮어 한국 작가들의 우수성을 보여주기에 가장 적합했다. 참여작가인 이완, 코디최가 제안하고 있는 문화 정체성 관련 전시 담론들과 이대형의 전략이 한국과 글로벌 사회의 문제를 함께 고민할 수 있는 대안이라고 생각했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내년 베니스비엔날레 예술감독을 맡은 이대형 현대자동차 아트디렉터. [사진=윤병찬 기자/yoon4698@heraldcorp.com] |
예술감독 발표 이튿날인 6월 29일, 서울 강남구 도산대로에 있는 현대모터스튜디오에서 이 씨를 만났다. 그는 “작품 구상이 이미 다 끝났다. 대박 재밌고 감동적”이라며 흥분을 감추지 않았다.
▶‘블루닷아시아’의 성공, 그리고 좌절=이 씨의 프로필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성공작은 2008년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아트페어 ‘블루닷아시아’다. 이 행사가 성공을 거둔 것을 계기로 2009년, 2010년 영국 사치갤러리에서 ‘코리안 아이’전까지 열게 됐지만, 정작 이 씨 개인에게는 큰 좌절을 안겨준 사건이기도 했다.
“당시 미술계는 눈이 아닌 귀로 컬렉션을 하던 때였어요. 뭐가 좋다더라 하면 사는 거죠. 안타깝더라고요. 작가나 작품을 고르는 기준을 바꿔야겠다 생각했어요. 그래서 캐치프레이즈를 걸었죠. ‘큐레이터의 눈으로 보세요. 그럼 2년 뒤 어떤 작가, 작품이 좋을지 보입니다’.”
한중일 젊은 작가들을 글로벌 아트마켓에 소개한 이 페어는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돈이 발목을 잡았다. 대리인의 금전 사고로 해외작가들에게 지불해야 할 운송료 등 수억원의 빚이 고스란히 이 씨의 몫이 됐다.
“너무 상처받았죠. 세상에 대한 실망보다 저에 대한 실망이 더 컸어요.”
그를 더 힘들게 만들었던 건 가깝다고 생각했던 지인들이었다. ‘욕심을 부리더니 그럴 줄 알았어’라는 말들. 믿었던 사람들의 싸늘한 반응이 더 큰 상처로 되돌아왔다. 손목을 긋고 싶을 정도로 좌절했던 그를 일으켜 세운 건 부모님이었다.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작가들이 네 이름이 있는 계약서를 믿었겠냐. 너를 믿었겠냐. 돈 해줄 테니 다 지불해라.”
재기할 힘을 얻은 이 씨는 오뚜기처럼 다시 섰다. 전시 기획, 컨설팅 등 몸으로 뛰어 번 돈으로 1년~1년 반동안 대출을 갚았다. 그리고 더 단단해졌다.
“이 일 이후로 전략가가 돼야겠다 마음먹었어요. 보이지 않는 리스크를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도 알았고, 사람보는 눈도 생겼죠.”
▶금수저?…나를 키운 건 8할이 할아버지=“혹시 금수저냐”는 질문에 빙긋이 웃는 이 씨. 그는 할아버지 밑에서 자란 어린 시절이 자신을 키웠다고 했다.
“일제시대 때 서점을 하셨는데, 한학과 미술에 관심이 많으셨죠. 할아버지가 해 주신 이야기 세 가지가 있어요. 아직도 생생하죠.”
이 씨가 전해 준 첫번째 에피소드. 할아버지는 유치원 다니는 손자에게 자전거 발이 왜 두 개인지를 설명했다.
“앞바퀴는 너의 철학, 가치관이고, 뒷바퀴는 자본이야. 가치관이 없으면 자본에 의해 굴려져서 낭떠러지로 떨어지지. 반대로 자본이 없으면 사유만 하며 제자리에 머물게 된단다.”
두번째 에피소드. 어느날 할아버지는 초등학생 손자에게 뜰 앞 장독을 가리키며 물으셨다.
“저게 얼마짜리인 것 같니.”
“글쎄요. 이빨이 깨졌으니까 오천원 정도 하지 않을까요.”
“아니 틀렸어. 그 안에 금이 들었을지 어떻게 아니. 사람이라는 건 그 안의 심지를 들여다보기 전까지는 섣불리 판단하면 안된다.”
마지막 에피소드. 토끼와 관련된 내용이다. 할아버지와 손자는 눈 내리는 겨울 토끼사냥을 나갔다. 손자는 한 마리도 못 잡았는데 할아버지는 두 마리나 잡아 오셨다. 그리고 토끼 발자국을 보며 말씀하셨다.
“토끼 발자국은 과거의 흔적일까. 미래의 상징일까. 토끼를 쫓기만 하면 영원히 못 잡아. 하지만 토끼 발자국을 보고 어디로 갈 것인지 행동을 예측한다면 너는 토끼를 잡을 수 있을거야.”
▶화장하지 않은 현실, 그 현실에 발 디딘 예술=이 씨는 홍익대학교 예술학과를 졸업하고 아트사이드갤러리, 선컨템포러리 등에서 일하다가 유학길에 올랐다. 뉴욕 컬럼비아대학교 미술사 대학원에서 ‘큐레토리얼 스터디’(MA)과정을 수학했다.
그는 유학시절을 통해 현실에 발디딘 예술의 중요성에 대해 배웠다.
“글렌 로리 뉴욕현대미술관(MoMA) 디렉터(관장)의 세미나 수업이 한 학기동안 진행됐어요. 어느날은 뉴욕타임즈 1면을 테이블에 던지더니, 거기에 나온 이슈에 대해 이야기하더라고요. 세상 돌아가는 이슈에서부터 비평이 시작된다면서요. 화장하지 않은 현실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를 생각하게 됐죠.”
미국, 유럽 등 문화예술 선진국들에서 얻은 경험은 그에게 문화예술을 산업적 측면에서 바라볼 수 있게 했다.
“미술관과 갤러리, 비엔날레급 큐레이터와 독립된 아트딜러, 아트펀드들이 서로를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보면 그 국가의 문화수준을 볼 수 있어요. 한국은 서로에게 굉장히 배타적이죠.”
한쪽에서는 돈 밖에 모른다고 말하고, 또 다른 한쪽에서는 현실을 모른다고 말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그는 “비엔날레의 시선으로 작가를 고르고, 뮤지엄 수준으로 기획을 하는 것과 더불어 상업적인 메커니즘 안에서 화랑, 컬렉터와 협업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미술만의 영역에서는 미술밖에 보지 않으니까 놓치는 것들이 많아요. 현대차에서 글로벌 MBA 출신들과 일하면서 어떻게 시장을 분석하고, 홍보 채널을 다변화하고, 어떤 메시지를 끌어낼 것인지를 섬세하게 배우고 있죠.”
시장, 자본의 영역에 발 담근 그는 ‘국립현대미술관 현대차 시리즈’, 영국 테이트 모던 터바인홀 ‘현대 커미션’, 미국 LA카운티미술관(LACMA)의 ‘더 현대 프로젝트’, 블룸버그 ‘브릴리언트 아이디어즈(Brilliant Ideas)’ 등 다양한 현대미술 플랫폼을 구축해가고 있다.
▶“글로벌 경험치, 인적자산 다 쏟아 넣을것”=“작품 구상은 다 끝났어요. 한 편의 아름다운 시(詩)처럼, 수렴하고 압축해서 관객의 심장을 쿡 찌를 겁니다.”
이대형 예술감독은 내년 베니스비엔날레가 어떤 지향점을 갖고 있는지를 먼저 내다봤다. 2015년 오쿠이 엔위저 총감독 체제 하에서 비엔날레가 자본주의의 폐해와 환경, 노동, 여성문제 등에 천착했다면, 크리스틴 마셀(파리현대미술관 수석큐레이터)이 총감독을 맡은 2017년에는 조금 다른 양상으로 전개될 것이라는 게 그의 예측이다. 이른바 ‘게임의 룰’이 바뀐다는 것.
“세계 미술계가 차기 비엔날레에 바라는 공통된 바가 있어요. 이번에 아쉬웠던 것들을 다음번에 채우고자 하는 것. 그 코드를 살짝 맞추면서 우리의 것을 던지는 거죠.”
이 씨는 한국관 참여작가인 이완, 코디최와 친분이 없다고 했다. 이 때문에 작가 선정이 의외라는 말을 많이 듣고 있다고. 이 씨는 “나와 호흡이 잘 맞는 것보다 비엔날레에서 가장 잘 읽혀질 수 있는 작가를 선정했다”고 말했다.
“제가 친한 작가만 해도 500명이 넘어요. 서운하다는 소리도 많이 듣겠죠. 그런데 이렇게 얘기해요. 히딩크가 한국을 월드컵 4강까지 끌고 갔을 때 학연, 지연 같은 건 보지 않았죠. 좋은 퍼포먼스를 보여줄 수 있는 작가들, 다음에 주목받을 확률이 높은 작가들을 선정한 겁니다. 제가 알파고는 아니지만요.(웃음).”
이대형 예술감독이 살짝 들려준 내년 한국관에 대한 이야기.
“하나의 스토리에 두 작가의 미션이 따로 있어요. 그리고 한 사람이 더 등장합니다. 저널리스트이자 시인이었던 미스터K. 1936년에 태어나신 분이죠. 돌아가신 분의 ‘귀신’을 소환해 한국 근현대사를 들여다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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