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부 보호기준 '절반의 완성'
항공사 일정변경 제재없고
소비자한테만 과중한 부담
휴가철 항공수요가 크게 늘면서 소비자 피해사례도 늘어난다. 국토교통부는 항공기 이용자들의 피해를 줄이고 권익을 지킨다는 취지에서 최근 ‘항공교통이용자 보호기준’을 마련했다. 하지만 오는 20일부터 시행 예정인 이 기준에 알맹이가 빠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표적인 항공소비자의 피해사례는 항공권을 취소ㆍ변경할 때 매겨지는 수수료다.
직장인 정모(28) 씨는 인천발 러시아 블라디보스톡행 외국 국적사의 항공권을 지난달 초 여행사를 통해 36만원에 예약했다. 출발까지 3달 가량 남은 시점이었다. 하지만 떠나기로 한 시점에 회사에 급작스런 스케줄이 생겨 취소를 문의했더니, 여행사에선 “항공사 수수료(200달러)와 여행사 취급수수료(3만원)을 합쳐 25만원을 내야 한다”며 “예약이 완료된 다음 날부턴 동일하게 적용된다”고 설명했다.
한국소비자원에 2015년 10월부터 올 3월 사이 들어온 항공권 관련 소비자피해 가운데 정 씨의 사례처럼 ‘항공권 구매 취소 시 위약금 과다 요구ㆍ환급 거부’에 관한 것(227건)은 전체의 절반을 넘었다.
국토부가 내놓은 ‘항공교통이용자 보호기준’에는 항공권 취소ㆍ환불 규정(6조)이 담겨 있다. 하지만 내용은 ‘국내에서 항공권을 파는 항공사와 여행사 등은 취소ㆍ환불에 따른 비용, 기간 등을 소비자가 쉽게 식별할 수 있도록 제시해야 한다’는 수준이다.
항공업계에서는 항공권이 판매되는 특성을 감안하면 수수료는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항공사와 여행사를 통해 특가에 판매되는 티켓은 저렴한 만큼 취소에 따른 수수료도 무거워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더구나 예약을 해놓고 지키지 않는 ‘노 쇼(No-show)’가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면서 항공사들도 강력한 수수료 정책을 만들어 손실을 막아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린다.
대형 여행사 관계자는 “여행사가 확보한 뒤 각종 프로모션을 적용해 저렴하게 판매하는 자리는 취소와 변경이 까다로운 게 당연하다”며 “나중에 취소나 변경이 예상된다면 애초 정상가 항공권을 이용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하지만 소비자의 변심 등에 따른 예약사항 변경에는 과중한 수수료를 물리면서, 항공사의 사정에 따른 일정 변경은 묵인하는 게 문제다.
실제 저비용항공사(LCC)를 중심으로 항공사가 비행시간, 심지어 날짜를 변경하는 사례가 종종 있지만 예약자에게 제공되는 보상정책은 변변치 않다. ‘항공교통이용자 보호기준’에도 국내출발 항공편이 30분 이상 지연되거나 결항하면 항공사나 여행사는 구매자에게 전화, 문자 등으로 사전에 고지해야 한다는 규정이 들어간 정도다.
이달 말 하와이로 떠나는 LCC 항공권을 예매한 직장인 김모(30) 씨는 “항공사 사정으로 2번이나 비행 일정이 달라졌다. 통보는 없었고 직접 홈페이지에서 예약내역을 확인하고서야 알았다”면서 “약관엔 ‘소비자가 감수해야 한다’는 식으로 돼 있더라”며 허탈해 했다.
수많은 항공사ㆍ여행사들이 수많은 좌석과 노선을 저마다의 기준에 따라 분류해서 판매하고 있다. 소비자들로서는 그런 정보들을 충분히 인식하지 못한 채 ‘최저가’만 찾다 보니 분쟁이 나타나기 쉬운 상황이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에서 직접적으로 취소ㆍ변경수수료의 가격을 제시하는 건 시장개입으로 비칠 소지가 있어서 어려울 것”이라며 “다만 소비자들이 합리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적정한 수수료 기준 등을 마련해서 항공사ㆍ여행사와 소비자 간 ‘정보 비대칭’을 해소하는 건 타당하다”고 주장했다.
현재 공정거래위원회는 항공사와 여행사의 항공권 취소 수수료 약관에 대해 직권조사를 벌이고 있다. 하반기 중에는 결과가 나올 것으로 보인다.
국토부 관계자는 “6월에 공정위, 소비자원, 소비자단체 등과 모여 ‘항공교통이용자보호협의회’를 처음 열었다”며 “실태를 살피고 관련 제도를 검토해서 수수료 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논의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박준규 기자/nyang@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