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 산업에서는 미국이 기초연구와 임상연구, 창업 생태계, 글로벌 인재 보유 등 모든 분야에서 독보적이다. 한마디로 미국은 바이오 산업의 천국이다. 미국 밖에서 이뤄진 기초연구 성과도 결국 상업화는 미국에서 진행된다.
유럽은 미국과 경쟁하기 위해 유럽제약협회 회원사와 유럽연합이 공동으로 운영하는 혁신의약이니셔티브(IMI)를 통해 혁신신약 분야에서 국가간, 대학간, 기업간 협력을 늘렸다. 따로 경쟁하던 조직들이 정보를 공유하고 협력하면서 유럽은 공동연구가 활발해졌다. 유럽 제약기업들이 세계 제약산업에서 최상위권에 다수 포진해 있는 것도 이런 오픈 이노베이션과 무관하지 않다.
한ㆍ중ㆍ일은 유럽과 달리 연합체가 형성되지 않았고 협력에도 소극적이다. 그러나 한ㆍ중ㆍ일 각각을 살펴보면 서로 시너지가 될 수 있는 장점들이 분명히 있다. 일본은 서양과는 다른 독창적인 학풍으로 아시아에서 노벨상 수상자를 매년 배출했다.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한 제약사들이 전세계의 바이오 벤처를 인수하고, 매출 1조원 규모의 중견 제약사도 많다. 하지만 일본의 창업 환경은 매우 열악해 안정지향적인 인재들은 창업을 기피하고, 투자환경은 보수적이어서 초기 바이오 벤처가 투자를 받기 어려운 상황이다. 중국은 후발 주자이지만 글로벌 기업에서 경험을 쌓은 인재들이 풍부하다. 신약연구용역회사(CRO)들의 수준도 세계적이고, 기초과학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증가했다. 하지만 세계 시장을 겨냥한 혁신연구보다는 내수시장 위주의 개량형 연구개발에 머물고 있다.
한국은 동북아에서 임상연구 환경이 가장 뛰어나다. 서울은 세계에서 가장 임상연구가 활발한 도시로 세계적인 수준의 임상허가 규정을 갖추고 있다. 외국계 기업들도 아시아 임상 최적지로 한국을 찾고 있다. 의료진의 풍부한 경험과 국제적인 네트워크를 통한 중개연구도 활발하고, 단백질치료제 생산용역기업(CMO)들도 아시아 최고 수준이다.
오는 21일 서울시가 ‘서울바이오허브’ 출범 컨퍼런스를 개최하는 것은 상징적인 일이다. 하지만 협력이 잘 되지 않고, 경쟁구도가 심한 면도 있다. 비즈니스와 임상연구가 활발한 서울, 많은 기업이 모여 있는 판교, 바이오 제품 생산 능력을 갖춘 송도, 정부지원센터가 밀집된 오송과 대구, 그리고 연구기관이 밀집돼 있는 대전은 각각의 강점이 있지만 유럽혁신의약이니셔티브(IMI)처럼 묶어내는 모습을 보기 힘들다.
한국 바이오 산업이 머지않은 제4차 산업혁명에 대비하고 반도체 시장보다 몇배 큰 1200조원의 제약바이오 시장과 500조원 의료기기 시장속에서 세계적인 위상을 갖기 위해 지금 필요한 건 바로 ‘오픈 이노베이션’이다. 서울바이오허브가 한국이 중국 및 일본과 어떻게 협력하면 미국이나 유럽과 대등한 경쟁을 할 수 있을까? 이제는 세계 속에서 동북아의 역할, 동북아 속에서 한국의 역할을 생각해 볼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