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
역사학계 “국정 역사교과서 ‘함량 미달’…오히려 시대 역행”
뉴스종합| 2016-11-30 18:32
-기초적인 사실 기술에 오류

-세계사 맥락 속 한국사 이해 부족…“우물안 개구리”


[헤럴드경제=신동윤 기자]지난 28일 정부가 공개한 국정 역사교과서에 대해 역사학계와 교사 단체들이 세계적인 흐름에 역행하는 ‘함량 미달’ 교과서라고 강력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역사교육연대회의, 한국서양사학회, 고고학고대사협의회는 30일 서울 동대문구 역사문제연구소에서 공동으로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가 공개한 역사 국정교과서 현장검토본에 대해 분석ㆍ비판했다.

이날은 그동안 상대적으로 비판이 적었던 전근대 부분에 대한 심층 분석 및 비판이 이어졌다. 전근대 부분에서는 최신 연구성과 미반영, 편찬기준 미준수 등의 문제가 새로 지적됐다.

이익주 서울시립대 국사학과 교수는 “교과서 공개 3일 전에야 뒤늦게 공개된 편찬기준마저 교과서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며 “고려의 토지제도인 공음전은 편찬기준에 ‘공로를 세운 관료에게 지급하는 토지임에 유의한다’고 돼있지만, 교과서에는 ‘고위 관료들에게 지급돼 세습이 가능했던 공음전’으로 기술돼 편찬기준을 정면으로 위배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 교수는 “고려시대 집필자 3명이 모두 은퇴한 고령의 학자로 최신 연구 성과를 소화하기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며 “2000년대 고려시대사 연구경향은 국제관계사, 친족제도, 여성의 지위 등이지만 이 분야 성과들은 거의 반영되지 않고 오히려 기존 교과서보다 퇴보했다”고 강조했다.

현대사 부분에 대한 비판은 이날도 이어졌다.

배경식 역사문제연구소 부소장은 현대사 부문에서 국가폭력과 인권탄압 서술누락을 큰 문제로 지적했다.

그는 “국민보도연맹 사건,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사건 등 국가폭력사건을 전혀 서술하지 않았다”며 “국가 차원의 과거사 진상규명 활동을 통해 진실이 밝혀지고 명예가 회복된 사건임에도 일체 서술하지 않은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어 “현대사 부분 서술만 보면 역사교과서가 아니라 반공과 안보라는 냉전 논리에 입각한 국방부의 정훈교과서 같다”고 혹평했다.

김태우 전국역사교사모임 회장은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를 국정교과서의 가장 큰 특징으로 꼽았다. 그는 “정부가 사실에 입각한 교과서라고 홍보했지만, 줄어든 현대사 영역에서 박정희 관련 서술은 크게 늘리는 대신 6월 항쟁 이후 30년 세월은 4쪽 안팎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역사교사모임의 분석에 따르면 고교 한국사 국정교과서는 박정희 서술분량이 9페이지에 이르며 미래엔출판사가 출간한 기존 검정교과서의 6쪽에 비해 크게 늘었다. 역사교과서 자체 분량이 검정교과서보다 20% 가량 준 것을 감안하면 박정희에 대한 기술이 대폭 늘어난 셈이다.

오류 문제도 다수 지적됐다.

김 회장은 “고교 한국사 190쪽에는 안중근의 사진과 유묵을 보여주며 ‘동양평화론’을 자서전이라고 설명하는데, 이는 자서전이 아니라 안중근의 미완성 논책(시사 문제를 논한 글)”이라고 지적했다. 통합임시정부 출범 이후 도산 안창호의 직함 역시 현장검토본은 내무 총장으로 적시했지만 실제로는 노동국 총판이었다고 김 교사는 지적했다.

세계사 부분에서도 오류는 이어졌다.

강성호 서양사학회장(순천대 교수)은 “함무라비 통치보다 400여 년 전에 우르남무 법전이 발굴됐으므로 함무라비 법전을 세계 최초의 법전으로 기술한 것은 오류”라고 설명했다.

또한, 기원전 477년에 결성된 델로스동맹이 기원전 500년 직전에 결성된 펠로폰네소스 동맹보다 앞선 것으로 서술된 것도 명백한 오류로 지적됐다.

이 밖에도 한국사를 세계사적인 맥락 속에서 이해하려는 노력도 크게 부족하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강 회장은 “고교 한국사 국정교과서는 세계사의 흐름과 밀접하게 연관된 한국근현대사를 세계사의 맥락 속에서 파악하지 못하고 ‘우물 안 개구리’식으로 서술돼 있다”고 지적했다.

일례로 개화기 조선과 대한제국의 시련과 서구 열강들의 제국주의 관계 설명이 누락됐거나, 1960년대 세계에서 발생한 혁명 중 하나였던 4ㆍ19 혁명에 대한 세계사적 맥락 속에서의 설명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중학교 국정교과서에 대해 강 회장은 “세계사를 국정교과서로 가르치는 나라를 전 세계에서 찾아보기 힘든 데다 이번에 나온 교과서는 기존 교과서들보다 세계화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고 오히려 역행하는 면도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21세기 국제사회에서 점점 부각되고 있는 동남아, 라틴아메리카, 아프리카 등의 지역에 대해 “국정교과서가 광범위하고도 철저한 무관심을 보여주고 있다”고 주장했다.

세계사 부분에서도 인간과 사회에 대한 의미를 깨우치려 하기보다는 단순 사실 나열에 그치는 문제도 거론됐다.

realbighead@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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