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일반
[탄핵, 운명의 날] 화만 키운 3번의 담화, 그리고 6번의 촛불…숨 가빴던 48일
뉴스종합| 2016-12-09 09:04
[헤럴드경제=이슬기 기자] “저로서는 좀 더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인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치고,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 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국민 여러분께 깊이 사과드립니다” <박근혜 대통령, 10월 25일 제1차 대국민담화>

사과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대통령이 직접 인정한 ‘비선’의 존재는 앞선 국정감사에서 일부 언론과 야권이 제기한(9월 말~10월 초) 각종 의혹에 ‘개연성’을 부여했다. 박 대통령의 ‘1분 40초 녹화 담화’ 다음날인 10월 26일부터 대학가에 시국선언이 들불처럼 번지더니, 29일에는 박 대통령의 퇴진을 촉구하는 촛불이 처음으로 서울 광화문 광장에 모였다.

[사진=헤럴드경제 DB]

심상찮은 시국에 검찰 수사도 뒤늦게 탄력을 받았다. 10월 30일 게이트의 핵심인 최순실 씨가 독일에서 귀국했고, 31일 검찰은 최 씨를 긴급 체포했다. 10월 31일 이승철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의 입에서 “(미르ㆍK 스포츠 재단) 모금은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의 지시”라는 말까지 나오자, 박 대통령은 11월 2일 김병준 국민대 교수를 신임 국무총리 후보자로 내정하며 정국 수습을 시도했지만 민심은 진정되지 않았다. 11월 4일 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역대 최저인 5%까지 떨어졌고(한국갤럽), 11월 5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제2차 촛불집회에는 10만의 인파가 모이며 ‘역사적 민중궐기’의 서막을 예고했다.

이어 11월 6일에는 게이트의 또 다른 핵심인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검찰에 출석했다. 안 전 수석과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은 구속됐다. 11월 8일 박 대통령이 국회를 찾아 “총리를 추천해달라”고 했지만, 같은 날 오후 ‘문화계 황태자’ 차은택 씨가 체포되면서 시국은 더욱 복잡해졌다. 11월 10일과 12일 차 씨의 ‘대부’로 알려진 송성각 전 콘텐츠진흥원장과 차 씨가 각각 구속됐고, 박 대통령이 “길라임이라는 가명으로 차움병원을 이용했다”는 보도(11월 15일 JTBC)에도 ‘엘시티(LCT) 철저조사’를 지시하며 정치권을 압박(11월 16일)하자 제3차(12일 광화문 100만명)와 4차(19일 전국 100만명) 촛불집회에는 사상 초유의 인원이 운집했다.

결국 11월 20일 검찰은 “박 대통령이 최 씨와 공범”이라는 중간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당초의 발언을 뒤집고 검찰 수사를 거부했다. 성난 민심은 박 대통령에게 대부분 등을 돌렸다. 11월 25일 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사상 최저치인 4%까지 떨어졌다(한국갤럽). 제5차 촛불집회(11월 26일)에는 전국에서 190만의 인파가 몰리며 ‘국민이 위임한 권력의 회수’를 명했고, 집회 참가 인원은 일주일 뒤인 12월 3일 전국 기준 232만명(제6차 촛불집회)으로 폭증했다. 그 사이 정치권 원로와 새누리당에서 제기된 ‘4월 퇴진, 6월 대선’ 주장이 무력화된 이유다. 이에 따라 박 대통령 탄핵 성공의 ‘열쇠’로 분류되는 새누리당 비박(非박근혜)계는 12월 4일 탄핵안 표결 참여를 결정했고, 지난 8일 탄핵안 본회의 보고를 시작으로 ‘운명의 시계’는 돌아가기 시작했다.

yesyep@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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