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고도예 기자] 삼성그룹이 압박에 의해 최순실(61) 씨 조카 장시호(38) 씨의 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 특혜 후원을 한 정황이 법정에서 무더기로 드러났다. 후원자인 삼성그룹은 직접 계약서를 마련하고 영재센터의 업체 등록을 돕는 등 갑(甲)과 을(乙)이 뒤바뀐 듯한 모습을 보였다.
17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부장 김세윤) 심리로 열린 최 씨와 장 씨, 김종 전 문체부 2차관의 첫 재판에서 검찰은 삼성그룹의 영재센터 후원과 관련한 증거를 공개했다.
검찰의 설명을 종합하면, 삼성은 지난 2015년 8월 21일 영재센터에 1차로 5억원을 지원했다.
전날인 20일 김 전 차관은 김재열 제일기획 사장과 만나 “영재센터는 청와대 관심사항”이라 언급했다. 김 사장은 다음날 이규혁 영재센터 전무를 만났다. 그러나 영재센터는 업체등록도 하지 않은 상태였다. 검찰은 삼성 직원이 “금일 오전 중으로 업체를 등록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라며 영재센터에 보낸 이메일을 증거로 냈다.
또 검찰에 따르면 삼성전자 A과장은 후원계약서 초안을 마련해 영재센터 측에 보내기도 했다. 법정서 제시된 A과장의 이메일에는 “시간절약을 위해 계약서를 저희가 작성했다. 수정이 필요하시면 수정해서 파일을 보내주시고 필요없으시면 도장을 찍어서 보내달라”고 쓰여있었다. 계약서 상 갑인 후원자가 을인 후원대상자에게 계약서까지 만들어 수정을 요청하는 이례적인 모습이다.
이후 2016년 3월 3일 삼성은 10억 8000만원의 후원금을 추가로 영재센터에 지원했다. 당초 2차 후원금을 그해 4월 21일까지 주기로 계약을 맺었지만, 영재센터 측은 일방적으로 후원금을 3월 2일까지 달라고 일정을 바꿨다.
삼성전자 직원들은 검찰 조사에서 ‘윗선’의 압박이 있었을 것이라 진술했다. 삼성전자 A과장은 검찰 조사에서 “영재센터에서 가져온 자료를 보고 부실하다는 인상을 받았지만 함께있던 상무가 ‘검토하고 답변드리겠다’고 했다”고 진술했다. 그는 이어 “영재센터 분들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상무와 자신이 1층까지 배웅하러 갔다”고 했다. 삼성전자 B과장도 “(2차 후원과 관련 내부에서) 똑같은 내용 같은데 10억씩 줘야하는가 하는 의견도 있었다”며 “윗선에서 후원해주기로 정리가 된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검찰은 최 씨의 지시로 김 전 차관이 주도해 삼성그룹을 압박했다고 보고 있다.
검찰은 이날 법정에서 장 씨가 손글씨로 ‘대빵’, ‘Mr(미스터) 팬더’라고 적은 영재센터 문건을 보여줬다. ‘대빵’은 최 씨를 의미하는 것이며, ‘미스터 팬더’는 김 전 차관을 뜻하는 것이라고 검찰은 부연했다. 검찰은 “(미스터 팬더 등 별명으로) 피고인들의 관계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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