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들어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는 유통산업은 이전과 다른 모습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자본력과 깔끔한 자체상품(PB) 브랜드를 앞세운 대형마트ㆍ신선식품을 갖춘 편의점이 동네상권에 들어오며, 이를 중심으로 상권이 급속하게 변화하는 추세에 있다. 그만큼 동네 슈퍼마켓들은 어려운 형편에 놓이고 있다. 오래 전부터 함께 슈퍼마켓을 운영해오던 동료 업자들도 어려워진 환경 속에서 하나 둘 씩 자리를 문을 닫기 시작했다.
지난 4년간 동네 슈퍼마켓은 5만개 갸량이 문을 닫았다. 통계청이 지난 2010년을 기점으로 해마다 산출하고 있는 소매판매액 업태별 지수에 따르면, 슈퍼마켓의 지난 2015년 전체 매출액은 전년 대비 3.5% 감소했다. 해마다 매출이 떨어지고 있다.
이처럼 어려워진 동네 슈퍼마켓을 돕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유통산업 발전법’이지만 제대로 지켜지고 있지 않다는 게 중론이다. 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 복병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바로 도매업자에 의해 만들어진 ‘체인형 슈퍼마켓’들이다. 어느샌가 일부 도매업자들은 자신들이 갖고 있는 자본력을 동원해 전국 각지에 체인형 슈퍼마켓을 만들기 시작했다. 초기 형태는 대기업들이 운영하는 기업형 슈퍼마켓(SSM)이었고, 규모도 SSM 수준이었다. 어느샌가 동네마다 많게는 2~3개 씩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랬던 체인형 슈퍼마켓들은 점차 영역을 넓혀갔다. 성공을 발판삼아 다른 곳에 지점을 냈고, 일반 대형마트처럼 여러개 매장을 보유하기 시작했다. 그런 만큼 영세 상인들의 설자리는 좁아졌다.
이들은 유통산업발전법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유통산업발전법은 유통업체가 입지한 지역의 지방자치단체가 대형마트와 SSM 점포에 대해 매달 이틀씩 의무휴업일을 지정할 수 있도록 규정한 법률이다. 지난해를 기준으로 했을 때 전국에서 70% 이상의 대기업 운영 대형마트가 격주 주말에 맞춰 의무휴업을 시행중이다. 대기업은 규제하는 법이, 되레 그보다 규모가 작은 중견 유통업체에는 적용되지 않고 있는 셈이다.
법망을 교묘히 피해 변해가는 유통산업 아래에서 2만개 가량 살아남은 ‘동네슈퍼’들은 근본적인 원인 해결을 요구하고 있다. 우선 대규모 점포 영업시간 제한 대상 확대로 소상공인 사업영역을 확보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두번째로 동네 슈퍼들을 대상으로 ‘생계형 적합업종법’ 제정이 하루빨리 필요하다는 것이다. 생계형 적합업종 법이란 소상공업이 실제 생계와 직결되는 사업에 대형업체들의 참여를 막는 법안이다. 중소기업중앙회와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를 중심으로 법제화를 위한 움직임이 진행되고 있지만 행방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소매업의 마지노선이라 할 수 있는 ‘동네슈퍼’는 가정과도 같다. 사회를 지탱하는 최소한의 단위가 가정이듯 동네슈퍼는 유통산업의 근간을 이루는 최소한의 기반이다. 따라서 근간을 저버린 산업은 지탱할 수 있는 최소한의 동력을 잃는 것과 마찬가지다. 최소한의 단위와 기반이 살아 있어야만 사회에는 진정한 발전과 경쟁이 이뤄질 수 있다.
동네슈퍼가 사라졌을 때 이를 근간으로 삼는 가정도 붕괴될 수 밖에 없다. 동네슈퍼를 살리기 위한 정치권의 바른 선택이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