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나도 아빠는 처음이야5]979일째에서 980일째, 내 1년 같은 아이의 하루
뉴스종합| 2017-03-08 18:17
[헤럴드경제=김상수 기자]<육아휴직 경험기도 아닙니다. 전문적인 지식도 없죠. 24개월 아이를 둔 30대 중반, 그저 이 시대 평범한 초보아빠입니다. 여전히 내 인생조차 확신 없으면서도 남편, 아버지로의 무게감에 때론 어른스레 마음을 다잡고, 또 때론 훌쩍 떠나고 싶은, 그저 이 시대 평범한 초보아빠입니다. 위로받고 싶습니다. 위로 되고 싶습니다. 나만, 당신만 그렇지 않음을 공감하고 싶습니다. 이 글은 그런 뻔하디 뻔한 이야기입니다.>



마지막 글이 지난해 9월, 감히 반년만이다. 24개월의 아이는 어느덧 32개월이다. 항상 느끼지만, 이 맘 때의 한 달, 심지어 하루마다 아이는 다르다. 어제와 다른 오늘의 아이를 볼 때마다, ‘너의 하루는 정말 소중하구나’ 뭉클할 때가 있다. 어제와 다름없는 오늘, 오늘과 다름없을 내일을 보내는 우리네 삶을 돌이켜 보기도 한다. 그 놀라운 하루의 변화를 볼 때면, 아이 삶의 궤적을 ‘개월 수’로 통칭하는 건 미안한 일이다. 그래, 내 아이는 오늘까지 980일째다.

979일째에서 980일째로 넘어가는 오늘 하루, 이 24시간 동안에도 아이는 또 한 번 날 놀라게 했다. 글을 연재하지 못했던 지난 6개월여, 우리 집의 최대 화두는 ‘어린이집’이었다. 오늘의 화두도 어린이집이다.

어린이집에 가기 싫다며 우는 아이와, 억지로 보내야 하는 부모. 아침마다 아내는 아이가 아닌 본인과의 사투를 겪어야 했다. 때로는 참고, 또 때로는 화를 내고, 또 때로는 자책하고. 어렵사리 어린이집 앞에 도착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물끄러미 엄마를 바라보곤, 선생님 손을 잡고 조용히 들어가는 아이 뒷모습에, 더 마음이 아프더랬다.

그래서, 아내는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기로 했다. 24시간 ‘독박육아’는 은행 업무조차 전략과 작전이 필요한 일로 변모했다(는 말을 전해들었다). 아내는 자주 힘들어했고, 그런 아내를 돕지 못한 나도 미안함에 불편했다. 또 한편으론, ‘왜 굳이’란 생각에 원망 든 적도 있음을 고백한다.

우리 아이는 외향적인 성격은 분명히 아니다. 부모의 관점으로 표현하자면 섬세하고 배려심이 많다. 어린이집에선 말썽 한 번 일으킨 적 없는 모범생이지만, 그 과정에서 아이가 겪는 스트레스는 여러 형태로 발현됐다. 전문가가 아니지만, 부모이기에 더 민감하게 정확하게 느껴지는 일종의 ‘본능’ 같은 거다. 아, 우리 아이가 힘들어하는구나.

아이가 아내와 24시간을 보내기 시작한 이후, 아이는 눈에 띄게 달라졌다. 이 역시 본능적으로 감지됐다. 조용하고 내성적인 줄 알았던 아이가 언젠가부터 춤을 추기 시작했다. 혼자 알 수 없는 노래를 부르더니 또 혼자 알 수 없는 춤을 춘다. 나와 아내는 ‘깨방정’이라 놀리고, 아이는 또 좋다고 더 춤을 춘다. “아빠 이름이 뭐야” 라는 질문에, 뭐라고 해야 하나, ‘기턱츄’? 글로 적기 힘든 단어를 답하곤 혼자 재밌다고 난리다. 층간 소음 걱정 한 번 안 하던 우리 집이 한 달 사이 3차례나 항의를 들어야 했다(죄송합니다. 꾸벅).

나도 아빠가 처음이고, 아이는 단 한 명뿐이며 전문가도 아니다. 이 변화가 아이 시기에 따른 자연스러운 변화인지, 어린이집 대신 아내와의 24시간을 선택한 결과인지, 또 이 같은 변화가 우리 아이에만 유효한지 정답은 알 수 없다. 어쨌든 우리 아이는 변했다.

오늘은 아이가 어린이집을 다시 다니게 된 날이다. 지난주까진 아내가 함께했다면 오늘은 처음으로 엄마 없이 홀로 어린이집에서 시간을 보내야 한다. 어젯밤부터 아내와 나는 조마조마했다. “내일은 엄마 없이 어린이집에서 선생님이랑 잘 보낼 수 있지?” 물어볼 때마다, 아이는 별다른 표정 없이 “응”이라고 했다. 불안했다. 아무 일 없다는 듯 다시 신나게 떠드는 아이가 내심 불안했다.

오늘 오전, 아내에게 카톡이 왔다. ‘엄청 씩씩하게 빠빠이 했어’.

이상하게 코끝이 찡했다. 뭉클했다. 지금 와 다시 생각해보면 이게 뭐라고, 싶다. 그래도 그 순간 진심 뭉클했다. 아내가 또 카톡을 보냈다. 아이가 선생님들 앞에서, “엄마 올 때까지 씩씩하게 기다리고 있을꺼야”라고 했단다.

하루 사이, 아이가 부쩍 커버렸다. 어제만 해도 조마조마했던 내가 민망할 지경이다. 979일에서 980일 사이에 갑자기 커버린 (느낌을 전해준) 아이를 보니, 심정이 복잡해졌다. 기특하면서도 아쉽다. 그냥 기특하기로 했다. 그렇게 마음 먹기로 했다. 981일째엔 더 크거라. 내 아이.



*다음 회는 공동육아 어린이집에 첫발을 내딛게 된 좌충우돌 경험담으로 이어집니다.



dlcw@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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