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 =한지숙ㆍ이원율 기자] #1. 3년 전 부인과 갈등으로 이혼한 성모(55)씨는 보증금 500만원에 30만원짜리 월세에 혼자 살고 있다. 6개월전까지만 해도 택시운전을 하며 생계를 유지했지만, 5년전 수술했던 허리 디스크가 재발해 그나마도 관뒀다. 요양 중에 월세를 내지 못해 보증금은 줄어들었고,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에 여러 일자리를 알아봤지만 취업은 반복적으로 실패했다. 이를 비관해 음주 횟수가 늘고, 세상에 대한 원망이 쌓이면서 자살 충동은 높아졌다.
#2. 김모(73)씨는 1년 전 병으로 부인을 떠나 보낸 뒤 부쩍 외로움을 탔다. 근처 사는 큰 아들이 자주 왕래하지만 그때 뿐이고, 혼자 있을 땐 부인 생각에 눈물이 흐른다. 최근에는 백내장 수술을 한 뒤 일상생활에 불편도 생겼다. 한달 전 자신이 거주하는 아파트에서 할머니가 신병 비관으로 자살했다는 소문을 듣고는, 이제 살만큼 살았으니 차라리 생을 마감하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서울시자살예방센터가 24시간 운영하는 ‘마음이상담전화’에 최근 걸려온 사연들이다. 만물이 생동하는 봄철에 외려 이처럼 우울증과 자살 충동이 늘어나는 것으로 나타나 관심이 요구 된다.
15일 서울시의 2011~2015년 자살통계를 보면 3월~5월에 자살이 가장 많이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령대로는 40ㆍ50대, 성별로는 남성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연간 자살자 수는 ▷2011년 2722명 ▷2012년 2391명 ▷2013년 2560명 ▷2014년 2467명 ▷2015년 2301명 등 2013년을 제외하고 매해 감소했다. 이런 추세는 통계청 전국 통계와도 비슷하다.
자살자 수가 가장 많은 달은 2011년 5월(292명), 2012년 5월(245명), 2013년 3월(243명), 2014년 3월(281명), 2015년 5월(233명) 등 3월과 5월에 몰렸다.
연도별로 3ㆍ4ㆍ5월 자살자 수가 차지하는 비중은 27.6%, 28.3%, 27.4%, 30.1%, 29.2% 등 2014년부터 30% 안팎까지 치솟았다.
안용민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우울증, 조울증 환자는 봄, 가을 등 계절이 바뀔 때 더 악화되는 경향이 있다”며 “이 시기에 자살하는 사람들의 70~80%가 우울증 상태라고 볼 때, 환절기에 자살 시도가 많아지고 성공하는 경우도 늘어난다고 볼 수 있다”며 생리학적 요인을 원인으로 들었다.
하지만 자살자의 연령대가 40ㆍ50대 중장년층이 가장 많아 사회적인 문제도 무시할 수 없어 보인다.
연도별로 40ㆍ50대 사망자와 비중은 1010명(37.1%), 934명(39.0%), 1020명(39.8%), 1002명(40.6%), 901명(39.1%) 등으로 집계됐다. 전체 자살 사망자수는 매해 꾸준히 감소하는 가운데 40ㆍ50대는 큰 변화가 없으며 비중 역시 최근 4년간 40% 안팎으로 높다.
성별로 보면 남성이 여성의 배 이상인 것으로 나타났다. 연도별 남성의 자살사망자 수와 비중은 1872명(68.7%), 1596명(66.7%), 1764명(68.9%), 1705명(69.1%), 1566명(68.0%) 등 매해 70%를 육박했다.
자살 수단으로는 목맴, 압박 등 질식에 의한 의도적 자해가 50~60%로 가장 많았다.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는 추락사(17~19%)가 뒤를 이었다.
[자료=서울시자살예방센터] |
우리 사회, 경제의 허리층인 40ㆍ50대 남성의 자살이 많은 이유는 부모부양에 자녀교육, 자신의 은퇴 뒤 인생 2막까지 준비 해야하는 ‘낀 세대’로서 느끼는 극심한 중압감이 꼽힌다. ‘사오정’(45세 정년), ‘오륙도’(50~60에 정년퇴직하지 않으면 도둑놈) 세대가 직면한 또 다른 위기다.
서울시자살예방센터 관계자는 “이 나잇대 남성이 실직 등 경제 위기로 사회적 지위의 변화를 겪으면 상실감을 크게 느끼고, 미래를 비관하는 경향을 보인다”고 했다.
정택수 한국자살예방센터장은 “개개인이 인생 100세 시대를 슬기롭게 대처해야하며, 정부와 지자체는 창업 지원, 귀농귀촌 지원, 노인 일자리 창출 등 다각도로 지원해 은퇴 후에도 경제 활동을 계속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중장년층 자살을 예방하는 근본적인 해결방법 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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