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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시즌 딜레마]표지만 다른 ‘인ㆍ적성검사 수험서’…취준생 ‘울며 겨자먹기’ 구매
뉴스종합| 2017-09-11 10:01
-인ㆍ적성검사 책 수십종…비싼데 내용은 부실
-순서ㆍ내용 등 ‘그대로’…‘그 나물에 그밥’ 심각
-“취업시장은 스쳐가는 곳 인식에 대충 만들어”


[헤럴드경제=정세희 기자] #. 대기업 입사를 준비하고 있는 취업준비생 박모(26ㆍ여)씨는 인ㆍ적성검사 문제집을 풀다가 ‘어디서 많이 본 문제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책꽂이에 있던 문제집을 찾아봤더니 똑같은 문제가 수두룩했다. 겹치는 문제를 빨간색 펜으로 체크해 확인하니 50문제가 훌쩍 넘었다. 박 씨는 “2만원을 넘게 주고 산 게 아까워 환불을 하려다가 이미 책을 사용해버려서 포기했다”며 씁쓸해했다. 

서점에서 취업준비 책을 보고 있는 취업준비생의 모습. 정세희 기자/say@heraldcorp.com

최근 입사시험에서 인ㆍ적성검사의 중요성은 날로 커지고 있지만 시중에 파는 일부 인ㆍ적성검사 문제집의 질이 매우 부실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9일 오후 서울시내 대형서점에서 인ㆍ적성검사 수험서를 살펴본 결과 일부 출판사의 ‘자기 복제’는 심각했다. 문제유형 해설이나 기본 예제는 물론 예상 문제까지 똑같은 내용을 싣는 경우도 눈에 띈다.

한 출판사의 A기업 대비 인적성검사 책의 경우 사무지각, 언어이해, 수 추리 영역에 수록된 문제가 같은 출판사의 다른 기업 대비 인적성검사 책에 실린 것과 완전히 일치했다. 100여 개의 문제가 순서나 보기 내용까지도 똑같았다. 사무지각, 언어이해, 언어추리, 응용수리 등 총 8개의 장으로 구성된 책에서 3개 장의 문제가 다른 기업 수험서와 같은 셈이다. 은행권 취업을 준비하는 김모(23ㆍ여)씨는 “기업들의 인ㆍ적성검사 시험의 유형과 내용이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에 비슷한 문제가 나올 수는 있지만 완전히 같은 문제들이 중복 출제되는 것은 지나치다”고 꼬집었다. 

자기복제 뿐만 아니라 부실한 내용의 문제들도 여럿 보였다. 다음은 ‘창의력’ 영역 대비를 위해 실제 예상문제로 출제한 문제다. ‘세상의 모든 돈이 사라진다면?, 사람이 순간이동을 할 수 있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 이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40가지 쓰시오.’ 창의력 문항을 대비하기 위한 팁(Tip)이라곤 “20가지 이상 생각을 쓰는 사람은 많지 않았으니 다양한 생각을 표출해 내는 연습을 해야 한다”는 것 밖에 없었다. 창의력이라는 신유형이 출제된다고 해서 문제집을 산 취업준비생들은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취업준비생 이모(28)씨는 “창의력 파트를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지, 비법은 무엇인지 알고 싶었는데 누구나 떠올릴 수 있는 질문 서너개가 예상문제로 나왔다”며 허무해했다. 

같은 출판사의 B기업 대비 인적성검사 책. A기업 대비 인적성검사 책과 문제번호, 내용, 보기까지 같은 문제가 100문제 이상 실려있다. 정세희 기자/say@heraldcorp.com

취업준비생들은 기업 취업 대비 수험서의 내용이 부실한 경우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울며 겨자먹기로책을 여러권 살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회사의 인ㆍ적성검사 유형이 조금씩 달라 그에 맞는 문제집을 풀어야 하기 때문이다. 한권에 2~3만원씩 달하지만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는데다 인ㆍ적성검사는 면접을 가기 위한 필수관문이기 때문에 한문제라도 더 맞히기 위해서 여러권의 문제집을 푸는 학생들이 대부분이다. 실제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지난 상반기 대기업 신입공채 모집에 지원한 취업준비생 485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인ㆍ적성검사를 준비하고 있다고 답한 취업준비생은 82.9%에 달했다. 준비 방법은 ‘독학으로 문제집 풀이를 한다’는 취업준비생이 55%로 가장 많았다.

부실한 내용의 일부 인ㆍ적성검사 수험서가 계속 유통되고 있는 데에 대해 전문가들은 로열티가 없는 취업시장의 특성을 지목했다.

한 취업컨설팅 전문가는 “취업시장은 고시나 수능시장과 달리 학생들의 로열티가 없는 잠깐 스쳤다 가는 시장이기 때문에 책을 잘 만들거나 못 만들어도 소문이 잘 안난다”며 “많은 문제집의 적중률이 떨어지거나 내용이 부실해도 수많은 기업을 준비해야 하는 학생들은 이에 대해 매달릴 여유가 없다”고 말했다.

sa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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