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맥케인 미국 공화당 상원의원이 22일(현지시간) 또 한번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에 한 방을 날렸다. “그레이엄-캐시디 헬스케어안에 선의의 투표를 할 수 없다”고 선언한 것. 맥케인의 이 한 마디에 트럼프와 공화당의 오바마케어 폐지 노력은 무위로 돌아갈 공산이 커졌다. 반대 이유도 걸작이다. 그레이엄-케시디 헬스케어안이 비용이 얼마나 들지, 또 얼마나 많은 이들이 도움을 받을지, 아니면 피해를 볼지 알수 없다는 게 이유다.
5년전 ‘대형마트의 월 2회 의무휴업’ 정책 도입 당시 한국 정치권은 어땠나? 소비자 권리 침해라는 볼맨 소리도, 전통시장이나 중소상인들에게 그리 큰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라는 얘기도 모두 허공을 떠도는 메아리에 불과했다.
5년이 흐른 지금 ‘의무휴업’이라는 유령이 또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이번엔 복합쇼핑몰, 이케아 같은 대형 전문매장, 월2회에서 월4회로 확대 등 먹성도 좋아졌다. 무서울 정도다. 국회에 계류중인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만 26개에 달한다. 한결같이 기업의 목을 죄는 입법안들이다. 전통시장과 중소상인을 위한다는 대전제에 누가 토를 달 수 있겠는가.
그런데 현실은? 얼마전엔 대형마트의 휴업이 인근 재래시장 등의 매출증가로 이어지지 못했다는 실증적 조사결과도 나왔다. 의무휴업 도입 당시 대형마트 휴업일 백화점 지하 식품코너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소비자들은 의무휴업일 전날 대형마트로 몰렸고, 인터넷으로 모바일로 눈길을 돌렸다.
그 뿐인가. 정부와 정치권이 애써 눈 감고 못 본척하는 것도 많다. 동네 재래시장을 보자. 요즘 재래시장 한 켠에는 어김없이 중대형 수퍼마켓이 들어서 있다. 면적만 대기업의 대형마트에 비해 적을 뿐이다. 하지만 없는 게 없다. 값도 싸다. 명절 당일을 빼곤 거의 대부분이 연중무휴다. 규모가 큰 곳은 심지어 PB(자체브랜드) 상품까지 내놓는 곳까지 생겨났다.
‘의무휴업’ 정책의 주인공은 전통시장과 중소상인이다. 하지만 그 과실은 운좋게 규제의 틈바구니에서 벗어난 또다른 기업에게로 돌아가고 있다. 전통시장과 중소상인은 여전히 매출하락에 허덕이고 있다. 이게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규제 대상을 확대하면 된다고? 중소형 기업으로까지 규제를 확대하면 전통시장과 중소상인들이 살기 좋아질 것이라고 할 것인가? 충분히 그럴만도 하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의 “이케아도 쉬어야 한다”는 발언에 그럼 전문매장도 의무휴업에 포함시키면 되지 않겠냐며 더 큰 규제를 들고 나오는게 현실이니 말이다.
원전 등 중대한 문제들과 관련해 언제나 정부와 국회가 들먹이는게 여론이다. 공론화위를 구성해 문제를 풀자고 한다. 그런데 반대목소리가 봇물 터지듯 나오고, 별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실증적인 증거들이 수두룩한 문제들에는 ‘여론’을 묻지 않는다. 되려 여론에 귀를 닫은채 선(善)의 대전제만 말할 뿐이다.
정책은 일종의 공권력이다. 공권력은 누구를 죽이기도, 살리기도 하는 무서운 폭력성을 내포하기 마련이다. 그 폭력성을 조금이라도 줄여야 하는게 국회와 정부의 몫이기도 하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도움을 받을지, 아니면 피해를 볼지 알 수 없다”는 맥케인식 계산법과 “공화당과 민주당이 협력해서 잘 해낼 수 있을 것으로 믿지만, 아직 시도조차 하지 않고 있다”는 맥케인식 일침이 부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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