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인단 사임시, 당분간 국선변호인이 변론 맡게 돼
[헤럴드경제=고도예 기자] 박근혜(65) 전 대통령이 16일 법정에서 구속 기간을 연장한 법원의 결정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박 전 대통령은 이날 기소된 지 6개월 만에 처음으로 침묵을 깨고 법정에서 입을 뗐다. 변호인단은 법원의 구속 연장 결정에 반발해 집단 사임 의사를 밝혔다.
박 전 대통령은 이날 오전 10시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부장 김세윤) 심리로 열린 공판에서 작심한 듯 직접 발언권을 얻어 입장을 밝혔다. 이날은 법원이 지난 13일 박 전 대통령에게 추가 구속 영장을 발부한 뒤 처음으로 공판이 열린 날이었다. 감색 양복 차림에 안경을 쓴 박 전 대통령은 담담한 표정으로 준비해 온 입장문을 읽어내려갔다. 목소리가 이따금 떨렸지만 표정에는 작은 변화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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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전 대통령은 “구속돼 주 4회 씩 재판을 받은 지난 6개월은 참담하고 비통한 시간들이었다”고 운을 뗐다.
그는 “한 사람에 대한 믿음이 상상조차 하지 못할 배신으로 돌아왔고 이로 인해 저는 모든 명예와 삶을 잃었다”고 말했다. 일련의 국정농단 사태는 측근 최순실 씨의 단독범행이었을 뿐이라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한 것으로 보인다.
박 전 대통령은 혐의를 적극 부인했다. 그는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는 믿음과 법이 정한 절차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심신의 고통을 인내했다”고 말했다. 이어 “롯데ㆍSK뿐만 아니라 재임 기간 그 누구로부터도 부정한 청탁을 받거나 들어준 사실이 없고 재판 과정에서도 의혹은 사실이 아님이 충분히 밝혀졌다고 생각한다”고 부연했다.
그는 법원의 구속 연장 결정을 납득하기 어렵다고 강조하면서 재판부에 대한 불신도 내비쳤다. 박 전 대통령은 “검찰이 6개월 동안 수사하고 법원이 다시 6개월 동안 재판했는데 다시 구속이 필요하다는 결정을 저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웠다”면서 “정치적 외풍과 여론의 압력에도 오직 헌법과 양심에 따른 재판을 할 것이라는 재판부에 대한 믿음이 더는 의미가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토로했다.
박 전 대통령은 한 차례 숨을 고른 뒤 “모든 책임을 제게 묻고 저로 인해 법정에 선 공직자들과 기업인들에게는 관용이 있기를 바란다”며 발언을 마무리했다. 자신을 둘러싼 수사와 재판 과정을 ‘법치에 이름을 빌린 정치 보복’이라고도 규정했다.
변호인단 전원은 이날 사임 의사를 표명했다. 유영하 변호사는 “무죄추정과 불구속 재판이라는 형사법의 대원칙이 힘없이 무너지는 현실을 목도하면서 향후 어떤 변론도 무의미하다고 결론내렸다”며 “창자가 끊어지는 아픔과 피를 토하는 심정을 억누르면서 허허롭고 살기 가득한 법정에 피고인 홀로 두고 떠난다”고 울먹였다.
재판부는 변호인단에 사임 결정을 재고해달라고 요청했다. 변호인단이 모두 사퇴하면 새로운 변호인을 선임해야 하는데 이 경우 10만 쪽이 넘는 수사 기록을 새로 검토해야 해 심리가 지연될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변호인단이 사임계 제출을 강행하면, 당분간 법원이 지정한 국선 전담 변호사가 박 전 대통령의 변론을 맡게 된다. 이후 박 전 대통령이 새로운 변호인을 선임할 수 있고, 여의치 않으면 국선 변호인이 계속해서 법정 변론을 진행한다. 피고인 당 한 명의 국선변호인을 선임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사건이 방대한 만큼 법원이 직권으로 여러 변호인을 선임할 수도 있다.
일부 지지자들은 이날 법정에서 난동을 부렸다. 방청석에 앉아있던 한 중년 여성은 “재판장님 저를 사형시켜주십쇼”라며 큰 소리로 울부짖었다. 법정 밖에서 취재진을 때리고 욕설을 퍼붓는 지지자들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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