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좌영길의 현장에서] 내 귓 속 매미소리
뉴스종합| 2017-10-17 10:00
내 귀에는 매미가 산다. 지금도 조용한 곳에선 매미 우는 소리가 들린다. 군 복무 시절 사격훈련을 하다가 얻은 이명(耳鳴) 때문이다. 일정 데시벨 이상의 소리를 들을 수도 없다. 소음성 난청이라는 증상이다. 음악을 듣거나 극장에서 영화를 볼 때 날카롭게 들려야 할 고음이 찢어진 스피커에서 나는 것처럼 뭉개져서 들린다.

사격장에서 귀마개 하나만 지급했더라도 이런 장애는 얻지 않았을 거다. 청각세포가 죽어서 나는 내 귓속 매미소리는 나만 들을 수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알아줄 리 만무했다. 증세가 심해지자 진료기록을 남겨두기 위해 일부러 국군통합병원에 가서 정식 진료를 여러번 받았다. 진료를 한 군의관은 “소리가 들린다는 걸 증명할 방법을 찾는 의사가 있으면 노벨의학상을 받을 것”이라고 우스갯소리를 했지만 나는 웃을 수 없었다.

그 때는 화가 났다. 안그래도 젊은 나이에 2년간 갇혀 지내는 것도 억울한데, 평생 이명과 소음성 난청을 달고 살아야 한다는 사실에 분노가 치밀었다. 하지만 속으로만 앓고, 자식 걱정하시는 부모님께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 지금은 세월이 흘러 마음이 누그러졌고, 조금 불편하더라도 그러려니 하고 살아간다. 나같은 사람이 대한민국 예비역 중에 얼마나 많을 지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얼마 전 길을 걷다 날아온 총탄에 비명횡사한 어느 사병 이야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일일 수도 있다.

‘군에서 죽으면 개죽음’이라는 속된 표현이 있다. 군복무 중 다치거나 사망한 군인은 국가로부터 일정한 보상금을 받을 수 있을 뿐, 실질적인 손해를 입증해 국가를 상대로 배상을 청구할 수는 없다. 헌법이 그렇게 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해야 할 헌법에 이런 독소조항이 버젓이 자리하게 된 것은 박정희 대통령 재임시절 부터다. 1967년 박정희 대통령은 월남전 파병으로 인해 국가가 배상해야 할 규모가 커지자 군인과 경찰은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도록 하는 법을 만들었다. 하지만 이 법은 당시 대법원에서 위헌 판결이 나면서 효력을 잃었다. 그러자 박 전 대통령은 아예 이 법을 ‘헌법에 위배될 수 없도록’ 헌법조문으로 밀어 넣었다. 국가배상 금지 법률에 위헌 의견을 냈던 대법관들은 연임이 안 돼 줄줄이 옷을 벗었다. ‘공무원의 직무상 불법행위로 손해를 받은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가 또는 공공단체에 정당한 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면서도 군인과 경찰은 여기서 제외하는 헌법 29조 2항은 이렇게 만들어졌다.

이 조항은 1987년 개헌 때도 폐지되지 않고 그대로 남았다. 헌법 개정 작업에 참여한 이들이 국고가 비는 것을 걱정한 탓이었을 지도 모르겠다. 우리 헌법상 국가는 지금도 국민을 징집해 군 복무를 시킬 수 있는 권리를 가질 뿐, 그에 걸맞는 배상 책임은 질 필요가 없다. 개헌 후에 군복무로 인해 다친 이들이나 유족들이 이 헌법조항 자체가 위헌이라는 점을 확인해달라는 헌법소원을 냈지만, 헌법재판소는 “헌법 조항 사이에선 효력의 우열을 따질 수 없다”는 결정을 내렸다. 개헌으로 이 조항을 삭제하기 전엔 국가배상을 허락하는 법률을 만들더라도 위헌인 셈이다.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해 존재하는 헌법이 오히려 군인을 차별하라는 지침을 내리고 있으니 모순이다.

지난 6월 김상곤 교육부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자유한국당 나경원 의원은 후보자의 ‘노란리본’ 배지를 보더니 “제2연평해전에서 죽은 장병 사망보상금은 3000만~5700만원 정도인데, 세월호 배상금은 4억6000만 원이었다”라고 언급했다. 전혀 상관없는 두 사안을 비교한 발언 자체가 부적절하다. 하지만 이 말에 따르더라도 현행 헌법상 유족들에게는 제대로 된 보상금을 요구할 권리가 인정되지 않는다.

국회에선 헌법개정을 위한 특별위원회가 만들어져 개헌을 논의 중이다. 대통령제를 4년 중임제로 할 것인지를 골자로 한 통치구조를 바꾸는 데 대해서는 관심이 지대하다. 하지만 이번 헌법을 고치는 과정에선 실제 헌법이 아닌 국가배상 금지 조항을 꼭 삭제해야 한다. 평소 ‘안보’를 외치는 자유한국당도, ‘적폐청산’을 말하는 더불어민주당에게도 그럴 책임이 있다.

사회섹션 법조팀 기자/jyg97@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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