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새해에 대한 희망을 설계하고 있던 설 연휴. 서울 지역 한 대형병원의 20대 여성 간호사는 여느 사람처럼 세초(歲初)의 기쁨을 느끼지 못했다. 가족, 친척, 남자친구…. 이 간호사는 자신을 아끼는 모든 사람을 뒤로 한 채 아파트 고층에서 화단으로 몸을 던져 세상과 이별했다. 도대체 무엇이 젊은 여성을 참척(慘慽ㆍ자손이 부모나 조부모보다 먼저 죽는 것)의 궁지로 몰아넣었을까.
의문과 안타까움은 이 간호사의 남자친구가 풀어줬다. 남자친구는 한 간호사 관련 사이트의 익명 게시판에 올린 글을 통해 “간호사 윗선에서는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태움’이라는 것이 여자친구를 벼랑 끝으로 몰아간 요소 중 하나”라고 했다.
‘태움’은 선배 간호사가 신임 간호사를 괴롭히며 가르치는 방식을 지칭하는 용어로, ‘재가 될 때까지 태운다’는 뜻이다. 흔히 누군가한테 괴롭힘을 당할 때 ’나를 들들 볶는다’고 표현한다. 하지만 ‘태움’은 생각보다 심각한 단어다. 언어적ㆍ신체적 폭력 같은 괴롭힘이 볶이는 수준을 넘어 불에 태워지는 것 같은 고통을 겪는다는 뜻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학교를 비롯한 우리 사회 곳곳에서 폐단으로 지적되고 있는 왕따(집단 따돌림)와도 맥이 닿아 있다.
문득 10여 년 전, 한밤에 갑자기 복통을 호소하던 친구를 서울의 한 대학병원 응급실로 데려갔을 때 일이 떠오른다. “저리 가, 같이 일할 수가 없네. 앞으로 차라리 너를 그림자 취급할 거야.”
많은 환자와 가족 앞에서 선배로 보이는 간호사가 후배인 듯한 간호사를 꾸짖고 있었다. ‘후배 간호사’는 우두커니 서서 대꾸도 못하고 눈물만 흘릴 뿐이었다. 이 광경이 ‘태움 문화’의 단면이라는 것을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 ‘군기가 세네. 왜 이리 시끄럽게 야단치지’라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수년 전 한 대학 후배가 여동생 이야기를 들려줬던 기억도 난다. “쾌활하던 애가 병원 간호사로 들어간 뒤에 말수도 적어지고, 밥도 잘 못 먹더라고요. 어느 날 밤엔 걔 방에서 흐느끼는 소리까지 들리더라고. 그러더니 계속 ‘병원 그만둔다’고 해서 말리느라 죽겠어요.” 지금 생각하니 후배의 여동생도 ‘태움’으로 고통받지 않았을까 짐작된다.
‘태움’이 사실상 직장 내 괴롭힘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은 일선 간호사도 잘 알고 있었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보건의료노조)가 간호사 1만1000여명을 대상으로 이달 14일까지 약 2개월간 실시한 ‘의료기관 내 갑질 문화와 인권유린 실태조사’에 따르면 간호사 10명 중 4명은 ‘태움’을 경험했다. 10명 중 1명은 폭행을 당하거나 성희롱, 성추행 등을 겪었다.
대한간호협회가 지난달 23일까지 약 한달 동안 실시한 ‘간호사 인권침해 실태조사’에서도 간호사 7000여명 중 40.9%가 ‘지난 1년간 직장에서 ‘태움’ 등으로 괴롭힘을 당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병원은 인명을 다루는 곳이다. 일정 수준 이상의 엄격한 훈련은 필수 불가결하다. 하지만 의료 현장의 가장 앞에 있는 간호사가 교육을 핑계로 인격적 대우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면, 그 피해는 환자와 보호자에게 미칠 수 밖에 없다. ‘내가 귀한 존재라면 남도, 후배도 귀한 존재’라는 역지사지가 만연된 ‘태움 문화’를 근절할 수 있는 해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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