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환자 약 7000명 사망 지켜본 허대석 서울대병원 교수
- “임종기ㆍ말기 나눈 조항 문제…나누기 어려운 病있어”
- “임종 장소, 병원보다 가정…삶 마무리할 시간 가져야”
[헤럴드경제=신상윤 기자]#1. 20년 전 폐렴을 앓아 한쪽 폐를 절제한 70대 남성 A 씨는 눈물이 심하게 나오는 증상을 치료하기 위해 안과 수술을 받다가 폐렴에 다시 걸렸다. 항생제 투여 등에도 폐렴 증상은 점점 심해졌다. 극심한 고통에 A 씨는 두 차례나 자살을 시도했다. 아내와 자녀는 평소 A 씨의 의중에 따라 인공호흡기 제거 등 연명의료 중단을 요구했다. 그러나 의료진은 법적 문제가 발생할 우려가 있어 연명의료를 계속했다. A 씨는 중환자실에서 2주를 더 버티다 사망했다.
#2. 생후 5개월 된 B군이 호흡곤란으로 응급실에 실려 왔다. 검사 결과 ‘척수성 근위축’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이 질환을 앓으면 감정 표현 등 몸의 기본 기능은 유지되지만, 근육이 점점 약해져 자발 호흡이 어려워지고 평생 인공호흡기에 의존해야 한다. 2개월쯤 뒤 B 군은 심한 호흡곤란으로 다시 입원했다. 의료진은 인공호흡기 적용을 권했지만, 부모는 “회생할 가능성이 없다면 반대한다”며 거절했다. B 군은 마지막으로 입원한 지 13일만에 숨졌다. 당시 나이는 채 8개월이 안 됐다.
오는 26일이면 ‘호스피스ㆍ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연명의료결정법ㆍ존엄사법)’이 시행된 지 정확히 50일이 된다. 하지만 의료 현장의 혼란은 계속되고 있다. 실제로 임종기 기준 등 구체적인 내용이 부족해 법안 시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목소리가 일각에서 속속 나오고 있다. 또 연명의료 결정 시 환자 자신이 직접 관련 서류를 작성하는 것이 원칙이고, 갖춰야 할 서류도 복잡해 어렵다는 환자와 보호자의 불만도 여전하다.
30여 년 간 암을 치료하며 환자 6000~7000명의 죽음을 직ㆍ간접적으로 지켜본 허대석 서울대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 허 교수는 말기 암 환자, 가족들과상담하며 연명의료 결정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관련 활동을 펼쳐 왔다. 그는 “연명의료결정법을 계기로 죽음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자세가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
허대석 서울대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는 진행기 암 환자를 항암제로 치료하는 종양내과학 권위자로, 30여 년간 환자 6000~7000명의 죽음을 직ㆍ간접적으로 지켜봤다. 허 교수는 1991년 말기 함 환자 가족 상담 모임인 ‘등불모임’을 병원 내 상담 봉사 단체로 발전시켰고, 1998년부터 12년간 서울대병원 호스피스실장을 맡아 말기 암 환자를 상담하며 ‘존엄한 죽음’을 돕는 일을 제도화해야 겠다는 활동을 펼쳐 왔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허 교수가 최근 펴낸 책이 ‘우리의 죽음이 삶이 되려면’이다. 책에는 그간 자신이 겪은 연명의료 현장의 갈등과 제도적인 문제점이 담겨 있다. 위 사례들도 실제 허 교수가 경험한 것이다. ‘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된 지 한 달이 넘었지만, 허 교수는 “아직 갈 길이 멀다”고 했다. 지난 20일 만난 그는 “아직도(제도적으로) 보완해야 할 것이 많은 법”이라면서도 “이 법을 계기로 죽음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자세가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허 교수와 일문일답.
-연명의료 결정 제도 정착에 나서게 된 개인적 이유는.
▶진료 과목이 암 환자를 진료하는 종양내과이기 때문이다. 1990년대만 해도 진료하는 환자의 절반 이상이 암으로 사망했다 거의 매일 임종을 앞둔 환자, 가족들과 연명의료 결정 문제로 고민을 했는데, 당시 법적 제도의 미비로 혼란이 많았다.
-실제로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하는 사람의 비율이 연명의료 중단을 원하는 사람의 비율에 크게 못 미친다.
▶어느 관련 여론조사에서도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원하지 않는다’는 의견이 90%를 상회하고 있지만, 실제 법에서 요구하는 서류에 본인이 서명하는 경우는 10%를 넘지 못하는데 그 원인은 다음과 같다고 본다. 일단 환자는 임종이 임박했음을 알리기를 꺼리고 있다. 또 입력해야 하는 서류가 너무 많고 복잡하다. 또 서류 전산 처리를 위해 의료기관에 윤리위원회가 설치돼 있어야 하는데, 이를 갖춘 기관은 약 3%에 불과하다. 의료진의 경우 다른 나라와 달리 해당 법이 말기와 임종기를 구분하고 있는 것이 문제다. 연명의료 결정은 임종기에 이뤄져야 한다고 법에 명시돼 있어 혼란스럽기 때문이다.
-사전의향서나 연명의료계획서를 사실상 본인이 작성해야 하는 탓인가.
▶환자 본인이 사전연명의료의향서나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하면 큰 문제가 없다. 하지만 환자의 의식이 나빠져 가족이 작성하게 되면, 절차가 복잡하다. 우선 가족관계증명서가 필요하다. 또, 환자의 의사의 추정이 가능한 경우, 가족 2명 이상의 일치된 진술이 있으면 가능하지만, 환자의 의사를 추정하는 것이 불가능한 경우 가족 전원의 서명을 받아야 한다. 짧은 시간 내에 가족 전원의 서명을 받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최근 독신자도 늘고 있는데, 이 같은 현실을 법이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것 같다.
▶해당 법은 가족관계증명서에 표시되는 직계 가족을 기준으로 서류 작성을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우리나라의 가족 관계가 많이 변했다. 독신자나 해체된 가족도 많다. 이런 사회적 변화를 법이 수용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와 문화적으로 유사한 일본은 지난달 관련 국가 지침을 개정했다. 눈에 띄는 내용은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가족의 범위를 친족관계에 국한하지 않고, 보다 넓은 범위의 사람을 포함하여 인정’한 것과 ‘가족이 없는 경우 환자 입장에서 무엇이 최선인지 의료케어팀이 상의해 결정’하는 것이다.
-일부 질환은 호전과 악화를 반복한다. 임종기와 말기를 정확히 구분하기 어렵지 않을까.
▶말기 암 환자의 경과는 비교적 예측 가능하다. 문제는 암 이외 만성 질환으로 사망에 이르는 경우, 환자가 악화와 호전을 반복하면서 임종에 이를 때다. 이때 말기와 임종기를 구분하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 의료진 사이에서도 이견이 발생할 수 있다.
-죽음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은 향후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
▶우리나라는 사회 분위기가 대단히 ‘의료집착적’이다. 끝까지 인공호흡기, 심폐소생술 등 연명의료를 시행하는 것이 효(孝)를, 최선을 다하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다. 회생 가능성이 없는 환자에서 연명의료는 불필요하게 고통을 가중시킬 수 있다고 본다. 고통을 최소화하면서 한 개인으로서의 삶을 마무리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중환자실에서 인공호흡기에 의존하여 생을 마감한다면 환자는 고통스러울 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과 마지막으로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없다. 임종 장소는 병원보다는 가정이 바람직하다. 불치병을 가진 환자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의 배우자로, 아버지로, 선후배로, 친구로 삶을 마무리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 임종 문화의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연명의료 중단 현황>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 1만2930명
연명의료계획서 작성 1452명
연명의료 중단 시행 1899명
*20일 오후 6시 기준. 자료:보건복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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