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정상회담이 코앞이다. 고비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역사적인 비핵화 회담은 긍정적인 방향으로 흘러 가는 중이다. 민족 중흥의 대 전환 계기가 될 일이니 이보다 좋을 수는 없다. 하지만 마치 통일이 코 앞인 듯 벌어지는 백가쟁명에는 헛웃음이 나온다.
지방선거 후보자들은 통일이 득표의 관건인양 공약과 정책을 남발한다. 인천을 평화의 도시로 명명하겠다는 건 애교 수준이고 해주-개성으로 통하는 경제벨트로 만들겠다는 얘기도 나온다. 북한 수학여행을 얘기하는 교육감 후보도 있다. 통일 이후 천도 논의도 진행된다. 개성과 장단면 일대, 교하, 적성 등을 놓고 풍수지리학적으로 분석하는 역술가도 있다. 남한에서는 아무 문제 없는데 북한에서는 죄가 되는 일도 많으니 남북한 간 범죄자 처리 문제를 조속히 정리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남북 학교 간 학력인정을 위한 교육과정의 공통 기준이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틀린 얘기는 아니다. 준비해서 나쁠것도 없다. 언젠가는 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앞서 나가도 너무 나갔다. 우물에서 숭늉 찾기고 배지도 않은 아이 교복 맞추는 격이다.
전쟁이 아닌 다음에야 통일은 무대 장막을 열듯 확 다가오지 않는다. 서서히 안개가 걷히듯, 중탕으로 팥죽 덥히듯 은근히 올 수 밖에 없다. 미국이 김정은 정권을 인정한다는 건 앞으로 상당 기간 남북간 서로 다른 체제가 유지된다는 얘기다. 사실 갑작스런 통합은 오히려 재앙이다. 갈등과 혼란만 불러올 뿐이다. 통일을 위해서는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각 분야에서 서로의 차이를 이해하고, 이를 조화ㆍ융합하는 과정이 전제되야 한다. 이른바 새로운 환경으로의 ‘재사회화’다. 숙성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통일은 실용이다. 지금 단계에서 내다볼 수 있는 미래는 인도주의적 지원과 남북 경제협력이다. 그중 가장 현실적인 건 지난 2016년 북한의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로 폐쇄된 개성공단의 재가동과 확장 정도다. 사실 개성공단만으로도 남북한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적지 않다.
폐쇄 직전 개성공단은 입주기업 125개에 북측 근로자 5만5000여명이 일했다. 그것만으로도 작지않지만 배후부지까지 당초 조성된 규모의 5%도 활용하지 못하는 수준이다. 지금의 20배 가까운 기업과 근로자들이 일 할 수 있는 공간이 남아있다. 말이 통하고 교육 수준도 높은 북한 노동력은 중국이나 베트남에 비할 바가 아니다. 손재주와 기술습득 능력은 최고다. 해외로 나간 노동집약적 산업체들이 돌아오기에 개성공단만큼 최적의 장소도 없다.
그마져도 단계가 필요하다. 개성공단이 한층 활성화된다해도 첨단 산업 공장이 곧바로 들어설 수는 없다. 재봉틀을 먼저 돌리고 난 후 나사를 만들고 시계를 조립할 수 있다. 굴삭기 정도는 조립하고 석유화학 플랜트를 돌려 본 근로자들이 있어야 자동차며 LED,반도체 공장 등 첨단 공장이 들어설 수 있다.
개성 공단만해도 이런 상황인데 해외 진출하듯 북한 여러지역에 공장을 이전하거나 건설하는 건 더 오랜 후의 일이다. 하물며 천도와 법률 수학여행임에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