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를 연출한 안판석 감독의 손예진에 대한 말이다. 안 감독은 손예진에 대해 “탁월하게 머리가 좋다”면서 “문화자산”이라는 표현을 썼다.
이처럼 손예진은 머리도 좋고 연기도 잘하지만 소통의 달인이기도 하다. 그의 방식은 이렇다. 상대에 대한 배려와 감사를 구체적으로 표현했다. 무조건적인 찬사가 아니다. 뜬 구름 잡는 말은 없다. 그렇지만 표현 방식은 부드럽다.
안 감독에 대한 이야기를 해달라고 했다. “감독님은 클로즈업을 안했다. 요즘은 고화질이라 16부 가면 부담스럽다. 바스트를 안딴다. 투샷이 많고, 원신 원컷이 원칙이다. 그게 놀라웠고 존중한다.” PD들은 촬영장에서 클로즈업과 풀샷, 바스트샷을 예비로 찍어놓는다. 하지만 안판석 PD는 불필요한 컷을 찍지 않아 시간외근무가 없었다는 것이다. 드라마 촬영장에서 연장 촬영이 없었다는 건 극히 이례적이다. 그 다음에는 상대 역할인 정해인(서준희)에 대한 코멘트도 부탁했다.
“멜로 드라마에서 멜로는 상대배우가 8할을 차지할 정도로 중요한다. 드라마를 몰입하게 하고, 궁금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런 노력이 16부까지 가기는 쉽지 않다. 깊이 있는 사랑 이야기를 해야 해서 상대배우의 도움을 받고싶었다. 정해인은 주인공이 처음이라 검증되지 않은 배우였다. 그의 전작도 많이 보지 못했다. 그런데 한 장면만 봐도 감성이 풍부할 것 같았다. 내가 그렸던, 상상했던 그대로였다.16부를 하고난 후에 내린 결론이었다. 나는 실제 연애에서 연하남을 생각해본 적은 없었지만, 나쁘지 않을 것 같다. 10살 차이가 나도 인생의 깊이가 있으면 상관 없다.”
손예진은 ‘예쁜 누나’에서 판타지의 예쁜 윤진아가 아니라 평범한 직장인 윤진아를 연기해 좋았다고 했다.
“데이트도 특별한 건 없다. 차안, 극장, 아파트 입구, 놀이터 등이다. 말도 안되는 공간이고 비주얼이다. 하지만 일상적으로 지나가는 공간이라도 이들에게는 굉장한 곳이다. 그것이 설렘 감정을 유발시키는 포인트다. 비현실적인 공간에서 찍는 게 아니라 현실적이고, 어떤 상황에서 들어본 얘기여서 더욱 더 공감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예쁜 누나’는 손예진과 정해인의 멜로 외에도 사내 성추행이라는 사회적인 문제도 다뤘다. 손예진이 맡은 윤진아는 직장내 회식문화와 성추행의 피해자라는 점에서, 미투 운동의 주역이라는 점에서 관심을 끌었다.
“미투를 자세히 보여주지는 않지만, 이런 일은 많고, 싸움을 했을때 피해자가 힘들어서 그만 두는 경우도 많았다. 변화되고 있는 시점이 얼마 안됐다. 내가 진아라면? 힘든 싸움이라 예상되면서 내가 왜했지 라는 생각도 하는, 과도기인 것 같다. 신념이 확고히 잡히지는 않았지만 진아를 연기 하면서 생각을 조금 깊게 할 수 있었다. 나라면 내부고발할까? 진아는 불합리와 비이성을 고발하고 동참했는데, 현실과의 벽에 부딪혔다. 그게 분노로 나타났다. 결국 진아 옆에는 금보라(주민경)라는 든든한 친구가 있었다. 이성 아닌 동성의 끈끈한 워맨스도 자연스럽게 보여주었다.”
손예진은 ‘클래식’ ‘내 머리 속의 지우개’ 등 과거 멜로를 찍을 때는 캐릭터의 틀안에 갇혔다고 했다. 특정 신에서 감정을 극대화 시키고, 눈물을 흘리는 식이었다. 10년이 지난 지금은 사랑의 감정이 하나가 아님을 깨달았다.
“감정의 범위가 넓어졌다. 사랑의 감정이 유일한 게 아니다. 자연스러운 사랑의 감정을 추구하고 싶었다.”
손예진은 사랑을 연기하면서, 그 순간이 끝날 것임을 안다. 사랑하다가 그 순간이 끝인줄도 모르고 끝난다는 것. 인생에서 화양연화라는 말의 의미를 알게 해주었다.
“‘우리 헤어져’ 하고 끝나는 게 아니고 그 전에 균열이 일어난다. 사람들은 ‘(정해인과)미국에 같이 가면 안돼요’라고 하지만, 진아는 성숙해가는 과정중에 끝난다.”
손예진이 이 드라마를 통해 얻은 질문과 결론은 “사랑은 순간인가? 결혼하면 사랑이 이성(異性)만의 감정이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사랑했을 때에는 후회하지 않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손예진은 “실제 어떤 남자를 좋아하냐”는 질문에는 “외모는 안본다. 마음이 넓고, 그릇이 큰 사람이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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