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이윤미 기자“정치는 절대 하지 않는다”는 선언에도 차기 대선 후보로 이름이 오르내리는 미국의 전 퍼스트레이디 미셸 오바마의 회고록 ‘비커밍(Becoming)’이 14일 전 세계 31개 언어로 동시 출간됐다. 역대 미 대통령 부부 자서전 사상 최고액인 730억원에 판권이 팔린 후 예약 판매만으로 아마존 1위에 오른 화제작이다.
14일 시카고 단골서점을 시작으로 ‘대선 정치인급 북투어’를 시작한 이 책은 미국 최초의 흑인 퍼스트레이디이며 권위와 차별에 맞서 취약한 여성과 아이들을 위해 활발한 활동을 이어온 미셸의 희망의 연대기이도 하다.
이야기는 미셸이 어릴적 살았던 시카고의 사우스사이드에서 시작된다. 이 동네는 원래 백인과 흑인들이 어울려 살던 동네였으나 백인들이 떠나면서 가난한 흑인 동네로 변했다. 한번은 백인동네에 갔다가 누군가 미셸네 차를 긁어놓는 일을 겪기도 하는데, 어린 미셸은 “남들보다 두 배 이상 잘해야 절반이라도 인정받는” 흑인 사회의 현실을 깨닫게 된다. 미셸은 가난한 집안의 흑인여성이라는 한계를 벗어나 중심을 향해 그런 노력을 차근차근 해나간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을 읽고 문법에 맞게 또박또박 말하는 법부터 학습하기 시작한 것이다.
특유의 성실함과 승부욕으로 프린스턴대에 입학한 미셸은 하버드 법대에까지 진학, 마침내 시카고로 돌아와 일류 법률회사에 변호사로 취직한다. 그리고 인턴 버락 오바마를 만난다. 지적이고 여유로운 미소와 특유의 발걸음, 조직에 관한 30쪽 짜리 보고서를 내는 등 버락은 단박에 회사에서 스타가 됐지만 미셸은 처음엔 별로 관심이 없었다가 어느 여름밤 아이스크림을 먹다가 버락에게 키스를 한 뒤, 혼돈의 삶으로 빠져들었다고 고백했다.
미셸은 젊은 버락의 강한 목적의식에 감탄스러워하면서도 그것과 함께 산다는 데 부담을 느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흔들림없이 원하는 목표를 성취하면서 승승장구하는 버락과 달리 미셸은 흔들리지만 자신의 소명을 찾아나간다.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한 일들, 청년들의 공직 커리어를 돕는 ‘퍼블릭 앨라이스’를 출범시키고 고향 시카고 시정부와 시카고대 부속병원에서도 중책을 맡는다
책에는 끊임없이 자신을 돌아보며 중심을 잡아가는 미셸의 모습이 진솔하게 담겨있다. 유산을 겪고 아이가 생기지 않아 체외수정으로 두 딸을 얻은 얘기는 처음이다. 결혼과 출산, 육아 앞에서 미셸은 여느 여성과 마찬가지로 불평등한 현실과 마주하면서 종종 회의와 분노를 오간다. 직장과 집, 아이 뒷바라지에 헐떡거리며, 그는 “마치 온전한 정신을 유지할 수 없는 딜레마에 빠진 기분”이었다고 털어놓는가하면, “오바마 부인이라는 사실이 나를 위축시켰다. 나는 이제 남편을 통해서 존재가 정의되는 여자가 된 것 같았다”고 털어놨다.
주상원의원에서 연방하원으로 다시 대선주자로 떠오르는 과정에서 미셸이 느꼈던 두려움과 갈등 등 내면의 얘기도 털어놨다. 미셸은 “늘 머나먼 지평선에만, 마땅이 와야 할 세상의 모습에만 시선을 고정하고 사는 것 같은” 버락에게 상처를 받았다고 했다.
책에는 정계에 발을 들여놓고 대통령이 되는 과정에서 있었던 수많은 음해도 담았다. 휴가지에서 어린 딸이 아파 총기규제 법안 표결에 빠져 정치적으로 큰 손해를 본 얘기, 오바마의 출생에 관한 트럼프의 근거 없는 의혹 제기, 미셸 자신의 연설을 교묘하게 조작한 가짜뉴스 등 뒷 얘기도 읽을 거리다.
과감한 패션으로 화제가 된 미셸은 옷에 메시지를 담고 싶지 않았다며, 옷과 액세서리는 모두 자신의 돈으로 구입했다고 털어놨다.
미셸이 백악관의 풍경을 바꿔놓은 일은 종종 화제가 됐다.열린 공간으로 바꾸고 텃밭을 일구며 건강한 식단을 위해 식품회사와 싸우고 학생들의 체육수업을 보장하고 어린 여성들의 교육에 힘을 쏟는 등 그만의 역할을 톡톡이 했다.
미셸은 자신의 평범하지 않은 여정을 들려주면서 쓸데없이 우리를 갈라놓는 편견과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길 소망했다. 그리고 “자신만의 목소리로 말하는 것은 그 자체로 힘이 된다. 그리고 기꺼이 남들을 알고 이야기를 듣고자 하는 것은 고귀한 일”이라며,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무언가가 되는 일”이라고 끝맺었다. 버락 오바마의 ‘담대한 희망’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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