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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 이 사람] “진보와 친기업은 상충하는 가치 아니다”
뉴스종합| 2018-12-27 09:00
-20년 베테랑 변호사에서 공무원 된 명한석 상사법무과장
-상법 개정 추진 “소수 주주 보호 아닌 공정한 룰 만드는 것”


명한석 법무부 상사법무과장. [사진=이상섭 기자/babtong@heraldcorp.com]

[헤럴드경제=유은수 기자] 명한석(53ㆍ사법연수원 27기) 법무부 상사법무과장은 20년 동안 기업법을 전문으로 다뤄 온 베테랑 변호사였다. 공직을 시작하게 된 것은 거창한 신념보다는 호기심이 계기였다. 법무부는 지난 4월 ‘탈검찰화’ 일환으로 상사법무과장 자리를 비검사 법조인에게 개방했다. 채용 공고를 본 그는 단순히 ‘재밌을 것 같아서’ 지원했다고 한다. 월급은 줄었지만 능동적으로 국정 과제를 선정하고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법무부 업무가 매력적이라고 한다. 대형 로펌 파트너 변호사에서 상법 개정을 주도하는 공직자로 변신한 그를 20일 법무부 집무실에서 만났다.

법무법인 세종과 지평에서 변호사로 활동한 명 과장은 지난 7월부터 과천 정부청사로 출근하는 신참 공무원이 됐다. “그 전엔 사실 법무부에 상사법무과가 있는지도 몰랐거든요. 그런데 업무 내용을 보니 제가 변호사로서 담당했던 상법, 집단소송법, 도산 관련 법들이더라고요.” 그는 “돈으로 보상이 안 되는 부분이 분명히 있는데, 내겐 그게 ‘자율성’”이라고 말했다. “변호사는 철저히 누군가의 대리인으로서 주어진 법의 틀 내에서 사고를 해야 하잖아요. 법무부에서는 국민을 대신해서 관련 법들을 개정하고 고치는 위치니까 성격이 완전히 다르죠.”

경제학을 전공한 그는 변호사를 시작했을 때부터 회사 정리, 인수합병(M&A) 등 기업 자문을 맡았다. 포스코건설의 송도신도시사업을 수년간 자문하는 등 굵직한 대기업을 주로 상대했다. 한편으론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의 회원인 까닭에 성향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더러 나왔다. 하지만 명 과장은 “민변에도 다양한 분들이 있고, 진보적 가치를 추구한다는 것이 꼭 대기업에 적대적이라는 의미는 아닙니다”라고 말했다. “경제의 가장 큰 주체가 기업인데 지속 가능한 성장이나 환경 보호, 인권 보호도 기업을 통해 충분히 실현할 수 있거든요. 양쪽의 시각을 갖는 사람들이 조화롭게 사회와 기업이 발전하는 새로운 길을 모색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 정부가 역점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기업 지배구조 개선 정책도 소수 주주나 시민을 보호한다기 보다 기업 자체를 내실화한다는 관점으로 접근한다. 상사법무과는 다중대표소송제 도입, 집중투표제와 전자투표제 의무화, 감사위원 분리 선출을 골자로 한 상법 개정안의 주무 부서다. “자본주의에서 주식회사의 주인은 누가 뭐래도 주주잖아요. 특별히 누구를 보호하는 게 아니라 주주들이 투자한 만큼 책임을 지고 권한을 갖도록 정확하고 공정한 룰이 있어야 불필요한 시간ㆍ자원 낭비를 줄일 수 있어요.”

상법 개정안이 통과되기까지는 갈 길이 멀다. 정기 국회에서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소위 상정 여부를 합의하지 못한 여야는 지난 21일 소위 상정을 논의하려 했지만 회의 자체가 무산됐다. 2월 임시국회에서 테이블에 오를 것으로 보이지만 경영계와 야당의 반대가 만만찮다. 개정안이 기업 경영권을 침해한다는 우려가 높다. 명 과장은 “상법 개정안이 꼭 경영진에게 불리하거나 소수 주주들에게 유리하다는 프레임으로 봐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예를 들어 최근 국내 펀드 KCGI가 한진칼의 2대 주주가 되면서 내년 주주총회에서 사외이사 3명 재선임을 놓고 총수 일가와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KCGI가 국민연금 등 주요 주주와 손을 잡고 조양호 회장 일가의 지분을 넘어서면 재선임되는 이사 대부분을 교체할 수 있는 상황이다. 집중투표제가 도입되면 양측이 그나마 균형을 잡을 수 있다는 게 명 과장의 설명이다.

집단소송제 확대 또한 “사후 구제 제도를 만들어 기업에 대한 사전 규제를 완화시키려는 취지”라고 말했다. 집단소송법을 확충해 오히려 불필요한 소송전을 방지하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집단소송제가 명확히 있으면 기업이 소송까지 가기 전에 스스로 해결하는 경우가 더 많아요. 신속한 피해 보상을 통해 기업 이미지와 신뢰도를 제고시키기도 쉽죠.” 공직 개방의 임기는 2년이고 경우에 따라 연장이 가능하다. 명 과장은 주어진 임기 내에 상법ㆍ집단소송법 개정은 꼭 실현하고 싶다는 희망을 밝혔다.

명한석 법무부 상사법무과장은 ▷문일고, 서울대 경제학과 ▷사법연수원 27기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 ▷국민연금기금 대체투자위원회 외부위원 ▷법무법인 지평 파트너 변호사

ye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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