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정부 모두 집권 초ㆍ중반 비서실 예산 키워
-“말 뿐인 책임장관제보다 실질적 권한이양 중요” 강조
8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 대브리핑룸에서 열린 수석비서관급 이상 인사 발표 브리핑에서 한병도 전 정무수석과 강기정 신임 정무수석이 악수하고 있다. 가운데는 임종석 전 비서실장. [사진=연합뉴스] |
[헤럴드경제=윤현종 기자] 문재인 대통령의 비서실 몸집이 커지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인원은 그대로인데 굴리는 ‘돈’이 부쩍 늘었다. 올해 청와대 비서실 예산은 역대 정부 최초로 900억원을 넘겼다. 증가율도 집권 초에 비해 갑절로 뛰었다. 돈은 흔히 총알에 비유된다. 대규모 예산은 ‘큰 영향력’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최근 20여년 간 역대 청와대가 집권 초에서 중반으로 넘어갈 땐 어김없이 비서실 예산이 크게 늘었다. 전문가들은 이를 우려한다. 문 대통령이 취임 때 약속한 ‘작은 청와대’가 퇴색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일각에선 책임총리제ㆍ책임장관제 등이 막강한 비서실에 가려 실행될 가망이 점점 줄어들 것으로 보고 있다. 원조 친문 비서실장인 노영민 실장의 ‘2기 비서실’이 짊어져야 할 또 다른 과제라는 평가가 우세하다.
9일 기획재정부ㆍ국회예산정책처 등에 따르면 지난해 확정된 2019년 청와대 비서실(안보실 예산 포함) 예산은 937억원이다. 지난해와 비교해 38억원 늘었다. 비서실 예산이 900억원을 넘긴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구체적으로 보면 인건비가 가장 많이 증가했다. 작년 376억여원에서 올해 404억원으로 28억원 가량 늘어났다. 현재 비서실 총 인원은 486명(안보실 43명 포함)으로 지난해와 같다.
국가안보 및 위기관리 예산 증가가 뒤를 이었다. 작년(4억7600만원)보다 10억원 이상 늘었다. 올해 예정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답방 등 일련의 외교ㆍ안보 이벤트를 대비한 차원으로 풀이된다.
중요한 건 예산이 늘어나는 속도와 추이다. 비서실 곳간 크기는 지난해보다 4.2% 늘었다. 집권 1년차에서 2년차로 넘어갈 때(2017~2018년)의 증가율 2%대보다 갑절이 뛰었다. 종합하면 청와대 비서실 예산은 문재인 정부 임기가 반환점도 돌기 전에 57억원이 늘었다. 이는 전임 박근혜 정부(2013~2016년) 때의 증가규모 48억원을 넘어선 수치다.
시선을 넓혀보면 최근 20여년 간 역대 모든 정부의 청와대 비서실 예산은 집권 초ㆍ중반 크게 늘었다. 이는 반복돼왔다. 김대중 정부 땐 집권 2~3년 차 시기에 48억원이 늘어 임기 중 증가폭 1위를 찍었다. 노무현 정부 때도 1~2년차 비서실 예산이 106억원 증가해 집권 초에 ‘큰 비서실’을 만들었다. 이명박ㆍ박근혜 정부도 마찬가지였다. 역대 대통령 4명의 집권 초ㆍ중반 늘어난 비서실 예산 규모는 임기 5년 간 증가한 돈의 62.9%를 차지했다. 모두 3년 차 이내에 비서실 규모를 대폭 늘린 셈이다.
문재인 정부 청와대 비서실도 현재 이런 흐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집권 2~3년차인 작년과 올해 사이 늘어난 예산은 임기 중 증가한 돈의 66.7%를 점한다.
전문가들은 예산이 조직 영향력을 측정하는 간접 지표라고 설명한다. 지난해 저서 ‘청와대정부’를 집필한 박상훈 정치발전소장은 “문 대통령이 취임 초 약속한 것과 달리 ‘청와대 중심 정부’로 가고 있다”며 “(비서실 조직과 달리) 청문회와 정부조직법에 의해 만든 내각으로 ‘실질적인 힘’이 실려야 한다. 청와대 비서실에 소위 ‘장차관급’을 둘 법적 근거도 부족하다”고 강조했다. 박 소장은 “헌법에 명시된 총리의 장관 제청권을 제대로 살리고, 국무회의도 헌법에 주어진 역할대로 활발히 작동토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말 뿐인 ‘책임총리ㆍ장관제’보다 시스템을 신경써야 한다는 뜻이다.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사람만 바뀔 게 아니라 권한이 가야 한다”며 “임기 내 남은 시간이 부족해 내각에 맡기느니 청와대가 다 틀어쥐고 가려는 생각인 것 같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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