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급액 다소 줄었지만 이자 등 부담 여전
신의칙 불인정…경영 어려움은 인정 안돼
재계 “문서로 경영상황 판단 본질적 한계”
[헤럴드경제=정찬수 기자] 기아자동차 근로자들이 회사를 상대로 낸 통상임금 청구소송 항소심에서 법원이 근로자 측의 손을 들어줬다. 업계의 관심사였던 ‘경영 위기’는 인정되지 않았다. 기아차는 상고 여부를 조만간 결정할 방침이다.
서울고법 민사1부(부장판사 윤승은)는 22일 기아차 근로자 2만7000여 명이 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임금 청구 소송 항소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정기 상여금과 중식비를 통상임금으로 본 1심과 달리 항소심에선 중식비가 통상임금에서 제외했다. 근로자들이 주장했던 가족수당도 통상임금에서 제외됐다.
앞서 지난 2017년 8월 1심은 기아차에 청구금액 1조926억원 중 4223억원을 지급하라고 원고 일부승소 판결했다. 이날 항소심 판결로 인해 기아차는 줄어든 지급금을 이자와 함께 지급해야 하는 부담이 커졌다.
업계의 관심사였던 ‘신의성실의 원칙(이하 신의칙)’은 인정되지 않았다. 신의칙은 권리의 행사, 의무의 이행을 신의에 따라 성실하게 해야 한다는 민법상 개념이다.
지난 2013년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으로 인정하면서 신의칙 원칙에 회사의 지급 책임이 없다고 봤다. 신뢰를 기반으로 노사 합의가 이뤄진 점을 고려해 법정 수당 청구를 한시적으로 제한한 것이다.
하지만 이날 재판부는 기아차가 예측하지 못한 재정적 부담을 안을 가능성을 인정하면서도 ‘경영상 중대한 어려움’에 처하거나 기업 존립이 위태로울 정도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기아차는 내부 논의를 거쳐 상고 여부를 결정한다는 방침이다.
기아차 관계자는 “소송과 별도로 기아차 노사는 작년 9월부터 5회의 본회의와 9회의 실무회의를 통해 합의점을 찾도록 노력 중”이라며 “신의칙이 인정되지 않은 결과에 대해 유감을 표하며 상고 여부를 검토해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재계는 임금협상을 둘러싼 제반 사정과 노사 관행을 고려하지 않고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을 신의칙 적용기준으로 삼는 것은 주관적이고 편파적인 판단을 일으킬 수 있다는 입장을 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입장문을 통해 “회계장부나 재무제표에 나타나는 단기 현상으로 경영상황을 판단하는 것은 본질적인 한계가 있다”며 “기아차가 상고할 경우 대법원은 통상임금 소송에서의 신의칙 취지를 검토해 상급법원 역할에 맞는 합리적인 판단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편 기아차는 실적 악화와 인건비 부담으로 작년 12월에 진행하던 생산직 채용을 중단했다. 기아차는 2017년 3분기 통상임금 패소에 따른 9777억원의 충당금을 회계장부에 반영하면서 4000억원을 웃도는 영업적자를 냈다. 지난해 영업이익률은 2.1%로 최악의 실적을 기록했다.
andy@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