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시대 더 자극적 영상 찾아
자꾸 찍고싶고 보고싶고…치료 필요
“죄의식 못느끼고 반복땐 도움받아야”
몰카를 반복적으로 보는 행위는 관음장애라는 일종의 병으로 약물 또는 인지행동 치료가 필요하다. [헤럴드DB] |
강남 클럽 ‘버닝썬’ 폭행 사건이 가수 승리의 성매매 의혹과 경찰 유착 및 가수 정준영씨의 몰카 범죄로까지 이어지며 큰 이슈가 되고 있다. 특히 정 씨는 2015년 말 주변 가수와 지인이 참여한 SNS 대화방에서 여성들과의 성관계 사실을 언급하며 몰래 촬영한 영상과 사진들을 전송한 사실이 밝혀졌다. 피해자도 10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혐의로 정 씨에게는 19일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되기도 했다. 정 씨의 이런 충격적인 행위가 드러나면서 몰카를 찍고 돌려보는 행위가 단지 한 개인의 성적 취향이 아닌 일종의 병으로 봐야 한다는 진단이 나오고 있다.
▶몰카는 성도착증 중 하나인 ‘관음장애’=홍진표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인간에게는 권력욕, 성욕 등 본능적인 욕구가 있는데 성욕은 중요한 인간의 본능 중 하나”라며 “하지만 이번 사건은 한 개인의 성적 취향이라고 하기엔 잘못된 행동인 것을 알면서도 반복해서 한 것을 고려한다면 하나의 질병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통상 몰카 범죄에는 ‘관음증’이라는 것이 연결된다. 다른 사람을 엿보고 싶은 심리는 인간에게 본능적으로 존재하는 욕망이다. 하지만 그 행동이 반복적이고 위법적이라면 문제가 된다. 정신건강의학에서는 몰카를 성도착증 중 하나인 ‘관음장애’로 분류한다. 당사자가 눈치채지 못하게 관찰하면서 강렬한 성적 흥분을 느끼는 것을 말한다. 미국정신의학회에서는 관음장애를 노출증, 마찰도착증, 성적피학장애, 성적가학장애, 소아성애장애, 물품음란장애, 복장도착장애와 함께 성도착증 유형의 하나의 분류하고 있다.
정 씨에 앞서서도 몰카 범죄는 끊임없이 터져 나왔다. 홍대 누드모델 몰카, 여자화장실 몰카, 모 여대 사진관 몰카 등 사회 곳곳에서 몰카 범죄가 계속됐다. 이는 디지털 시대의 하나의 그늘에 해당한다. 이동귀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과거는 글(활자)의 시대였지만 지금은 영상의 시대”라며 “웬만한 영상에는 반응하지 않게 되면서 더 자극적인 영상을 추구하는 사회 분위기가 이런 왜곡된 현상으로 나타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서 “SNS에서 남들의 주목을 받기 위해 자살 장면이나 테러 장면을 생중계하기도 하는 상황까지 갔다”며 “언제 어디서나 영상을 찍기 쉬운 스마트폰의 보급도 이런 현상을 부추겼다”고 덧붙였다.
▶중독까지 갔다면 약물 및 인지행동 치료 필요=홍 교수는 “정상적인 행위로 성적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하다보니 이런 행동으로 자신의 우월함이나 남성성을 과시하는 수단으로 삼은 것 같다”며 “이렇게 위법적인 행위에 대해서는 법적 처벌도 있겠지만 왜곡된 성 욕구를 교정할 수 있는 인지행동 치료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정 씨의 경우 지난 2016년 여자친구를 불법 촬영한 것이 무혐의로 결론나면서 이런 행동들을 계속 해도 된다는 인식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이 교수는 “선을 넘은 행동이 처벌을 받지 않거나 애매하게 넘어가다보니 범죄가 아닌 걸로 생각하고 또 다시 같은 행동을 한 것이 아닌가 한다”고 말했다.
정신건강의학에서는 이런 반복적인 행동을 ‘중독’ 증상으로 보고 치료 대상으로 본다. 중독은 초기에 쾌락이나 만족을 위해 즐기던 것이 반복적으로 이뤄지면서 이후에는 그것 없이는 참을 수 없어 할 수 없이 지속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 교수는 “어떤 대상에 대한 중독의 수준까지 가게 되면 내성과 금단 증상이 나타나 내가 잘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또 다시 찾게 된다”며 “이렇게까지 됐을 때는 더 깊이 빠지기 전에 전문가의 도움(치료)을 받아야 정상으로 돌아올 수 있다”고 말했다.
성도착증의 경우 치료가 쉽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약물치료와 인지행동치료와 같은 치료가 병행되면 증상을 완화시키는데 도움이 된다고 한다. 약물치료는 남성 호르몬 수치를 낮춰주는 일종의 화학적 거세 방법이나 항우울제 등을 복용하게 하는 것이다. 인지행동치료로는 증상 재발을 예측하고 이에 대처하는 방법 등을 가르쳐주는 것이다.
▶피해자는 외상후스트레스장애 겪을 위험 높아=한편 정 씨와 같은 가해자뿐만 아니라 몰카 범죄로 인한 성범죄 피해자들을 보호하고 치료할 수 있는 관심도 필요하다. 홍 교수는 “성범죄 피해자들은 당분간은 남들의 시선을 피하거나 쉽게 상처를 받는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를 겪는 경우가 많다”며 “자극으로부터 벗어날 때까지는 일정 기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명상, 여행 등을 추천하고 전문가와 상담 치료를 받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나의 단순한 호기심으로 인해 타인의 명예나 프라이버시를 침해해 신체적 또는 정신적인 피해를 줄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며 “누구나 그 대상(피해자)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그것이 잘못된 행동인지를 알고 자제하는 성숙한 시민 의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손인규 기자/ikson@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