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슈비츠의 생존 화학자이자 작가 프리모 레비의 마지막 정신의 풍경을 읽을 수 있는 ‘프리모 레비의 말’(마음산책)은 공식 자서전을 염두에 두고 문학평론가 조반니 테시오와 세 차례에 걸쳐 나눈 인터뷰를 담고 있다.
‘이것이 인간인가’ ‘주기율표’ 등을 통해 증언문학의 한 장을 연 프리모 레비의 어린시절과 학교생활, 친구 관계와 콤플렉스, 성공과 좌절 등 레비의 근저를 이루는 아우슈비츠 이전의 삶의 모습이 레비의 입을 통해 드러난다.
이 대화는 레비와 10여년간 우정을 나눈 테시오가 공동으로 자서전을 쓰기 위해 1987년 1월 12일, 1월26일, 2월8일 세 차례 진행됐으나, 그 해 4월11일 레비의 자살로 미완성이 됐다.
병적일 정도로 수줍을 많이 타는 성격이라 젊은 시절, 여성과의 만남에 서툴었던 고백과 ‘이야기가 최고의 치료제’임을 강조하며 스스로 트라우마를 극복하려한 이야기들이 조심스럽게 내비친다. 지적인 열정이 강렬했던 아버지, 그에게 영향을 준 선생님들과의 일화와 친구들과의 우정, 인종법 때문에 실험실 조교에서 쫒겨날 수 밖에 없었던 얘기 등 레비는 큰 사건에 묻힌 작은 기억들을 끄집어내며 머뭇대고 때로는 양양하게 드러내는 인간적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파시즘저항운동을 펼치다 체포됐던 순간, 함께 했던 여성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 발표시기를 거짓으로 밝힌 두 편의 단편소설에 대한 고백 등 레비는 예순일곱 자신의 삶을 반추하며 제자리를 찾아간다.
테시오와의 인터뷰 약속을 잡아놓고 자살한 레비의 흔적을 마지막 말들에서 느껴볼 수 있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