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
김빛내리 교수 “암, 유전병 치료 제외…배아 유전자편집 반대”
뉴스종합| 2019-04-22 09:23
헤럴드경제와 인터뷰하고 있는 김빛내리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 석좌교수 [사진 이정아 기자/dsun@]

[헤럴드경제=이정아 기자] “특정 유전 질환을 치료하는 목적이 아니라면 배아세포의 유전자 조작은 반대합니다.”

RNA 분야의 1인자로 평가받는 김빛내리(사진)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 석좌교수(기초과학연구원(IBS) RNA연구단장)는 19일 제주 서귀포시 제주국제컨벤션센터에서 가진 헤럴드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밝혔다. 

김 교수는 “희귀 유전병을 치료하기 위한 유전자 제어 기초 연구는 필요하다”며 “다만 전혀 규제를 받지 않는 시도들은 사회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들기 때문에 신뢰를 쌓아가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유전 질환을 유발하는 극히 희귀한 돌연변이를 조절ㆍ편집하는 ‘유전자 치료’와 종의 능력을 개선하는 ‘유전자 강화’는 구분돼야 한다는 의미다.

실제로 최근 들어 유전자 치료는 현실이 되고 있다. 김 교수는 “치료제로서의 RNA가 본격적으로 대두되고 있다”며 “지난해 8월 미국 제약업체 앨나일람사가 소간섭RNA(siRNA) 기술 최초로 미국 식품의약국(FDA) 신약 승인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RNA 치료제는 환자 몸에서 단백질이 생성되도록 도와주는 만큼 맞춤형 치료제가 될 수 있다”며 “이미 RNA 검출로 에볼라, 메르스, 사스 등 바이러스 진단이 이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20여 년 전에만 해도 RNA는 DNA의 ‘보조자’ 정도로 여겨졌다. 그러나 DNA가 가진 유전정보를 복사해 유전자 발현을 조절하고 단백질 합성에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RNA의 작동 원리가 속속 밝혀지면서 최근에는 RNA 치료제 및 백신 개발이 주목받고 있다. 예컨대 특정 기능을 수행하는 RNA가 잘못되면 암이 생긴다. 이를 바꿔 말하면 특정 RNA를 조작해 원치 않는 단백질 생성을 바로잡아 암을 치료할 수도 있는 것이다.

김 교수는 “희귀 질환의 경우 유전적인 원인을 알고 있더라고 해도 환자 수가 극히 적어 신약 개발로 이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그러나 희귀 질환을 발현시키는 유전 정보만 알면 세포에 RNA를 주입해서 환자 맞춤형 치료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RNA 치료제는 개발 비용이 적고 시간이 짧게 걸릴 뿐만 아니라 생산시설 허가도 쉽다는 장점이 있다”고 덧붙이면서 “30년 뒤에는 유전병 상당 부분에서 유전자 치료가 가능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유전자 절반 이상을 조절하는 것으로 분석되는 마이크로RNA(miRNA)의 세계적인 권위자다. 그는 지난 2002년 miRNA가 생성되는 과정을 세계 최초로 규명했다. 이후 miRNA를 만드는데 관여하는 효소인 ‘드로샤(drosha)’를 비롯해 키 크는데 관여하는 miRNA, 줄기세포 유지를 도와주는 miRNA, 암세포의 성장과 사멸을 조절하는 miRNA 등을 발견하며 굵직한 성과를 냈다. 지난해에는 RNA 꼬리가 유전자 조절에 이용될 수 있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그는 “지금은 만들어진 RNA를 안정화하는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며 “RNA에 꼬리를 달면 RNA가 안정화되기도 하고 분해되기도 하는데, 안정화시키는 기전이 치료 효과를 높이는데 유용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김 교수가 이끄는 연구팀은 생명과학 전공자를 비롯해 공학 전공자와 수의학 전공자가 머리를 맞대고 있다.

다양한 분야의 인재와 같이 연구를 진행하는 이유를 묻는 이어진 질문에 김 교수는 “융합 연구를 통해 서로 배울 수 있는 것들이 굉장히 많다”며 “다양한 전공자가 모인 ‘드림팀’을 꾸린 덕분에 RNA 분야에서는 우리 연구팀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런 지점이 국내 연구에서 부족하게 느껴지는 부분”이라며 “융합형 의사과학자를 양성하는 MD-Ph.D 프로그램 등 다른 학문의 지식방법론을 익히는 연구 지원 등을 좀 더 내실화하고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우수한 생명과학 연구 성과를 기대하기 위해서는 기초과학의 저변이 넓어야 한다고도 언급했다. 그는 “장대 위에 갑자기 무언가를 세울 수 없다”며 “밑에서부터 차곡차곡 쌓는 피라미드 식으로 관련 생태계가 확대돼야 높은 수준의 연구 성과도 나올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탑 다운(Top Down)’ 방식으로 지원이 되면 그때는 이미 연구 시기가 늦은 시점”이라며 “기초과학 투자의 효율성 높이기 위해서는 연구자들이 알아서 하도록 만드는 연구자 중심의 ‘바텀 업(Bottom Up)’ 지원이 이뤄져야 된다”고 강조했다.

한편 그는 “자연에 있는 비밀의 열쇠를 발견할 때 얻는 만족감은 형언할 수 없이 크다”라며 “가설이 실험으로 정확하게 입증될 때는 연구실에서 소리를 지르거나 방방 뛰며 좋아했다”고 웃으며 말했다. “과학자는 정말 멋지고 복 받은 직업”이라고 말하는 김 교수의 눈빛이 반짝였다.

dsu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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