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초반 미국의 영화 대여시장을 이끌었던 블록버스터가 새로운 기술로 무장한 넷플릭스에 밀리면서 2010년에 파산을 한 적이 있다.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의 발전과 빅데이터 기반의 고객 맞춤형 추천 서비스를 들고 나온 신생기업 넷플릭스에 의해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한 블록버스터는 소비자들로부터 외면을 당하고 말았다.
더 나아가 넷플릭스는 지난 2월의 `제91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자체 제작한 영화 `로마(Roma)`로 감독상, 촬영상, 외국어영화상 3개 부문을 수상하였다. 지난해 TV 콘텐츠 부문에서 에미상을 수상한데 이어서 영화 부문에서도 자체 제작한 콘텐츠의 경쟁력을 증명한 것이다. 여전히 오프라인 극장을 제외한 온라인 스트리밍 회사로서 넷플릭스는 여전히 오프라인 영화관에서는 오리지널 콘텐츠를 배급하지 않고 있다.
이러한 넷플릭스의 전략은 일반적으로 `소비자들은 똑같은 영화를 봐도 각기 다른 의미를 부여한다`는 개념으로부터 출발한다. 누군가는 오늘 개봉 영화는 반드시 봐야한다는 생각으로 기꺼이 가격을 지불 하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그저 시간을 때울 생각으로 가격을 부여할 수 있다. 이렇게 각기 다른 가치부여에 따라 넷플릭스는 개별적인 영화를 일반적 소비자들에게 범용적으로 판매하는 비즈니스 모델보다는 번들링 형태로 개별 고객에게 다양한 영화를 판매하는 전략을 추구해왔다.
또한 넷플릭스는 번들링과 구독이라는 전략의 결합을 통해 모든 콘텐츠를 단순화된 가격으로 제공하는 차별화전략으로 경쟁력을 강화해왔다. 물론 소비자 입장에서도 다양한 시청시간, 소장여부, 시청환경 등 여러 제약조건을 넷플릭스를 통해 해결할 수 있기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가입자는 약 1억 5000만명을 넘어서고 있는 상황이다.
넷플릭스 사례를 통해 이제 한국 금융 산업의 변화와 혁신, 그리고 미래를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먼저 넷플릭스는 고객분석과 알고리즘, 스트리밍기술의 혁신으로 고객의 동영상 콘텐츠를 선택하고 구매하는 방식을 바꾸어 버렸다. 즉 소비자의 시청방식 뿐 아니라 그 대상을 정해주는 서비스를 제공했다. 방대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소비자 본인보다 소비자를 더 잘 알고, 그에 걸맞는 콘텐츠를 추천하는 것이다. 실제로 넷플릭스에서 시청되는 콘텐츠의 대부분은 이러한 추천에 의한 것이라고 한다. 마찬가지로 금융기업도 보다 정교한 데이터 기반의 고객지향 서비스로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해 금리와 상품, 자산관리의 새로운 방법을 고민해봐야 한다. 전통적인 대면적 채널에 기반하는 영업방식에서 벗어나 소비자가 선호하는 금융상품과 서비스의 흐름이 무엇인지를 연구하고, 이에 따라 금융 소비자가 은행과 보험, 증권사를 선택하고, 더 나아가 금융상품과 서비스를 구매, 이용하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는 전략이 금융 산업에게 요구되는 미래 전략인 것이다.
두 번째로 넷플릭스는 실리콘밸리에서도 유명한 창조적 파괴의 전형적 사례이다. 넷플릭스는 연체료를 폐지하고 DVD를 우편으로 배송하는 아주 단순한 혁신에서 출발하여 시장의 선두주자였던 블록버스터를 무너뜨렸다. 이후에는 바로 디지털 스트리밍으로 전환하고, 이제는 콘텐츠 개발기업으로 거듭나고 있다. 이러한 넷플릭스의 전략적 유연성이 시장에서 성공을 거두기까지는 불과 7년여의 시간이 소요되었다. 과거의 성공이나 기존 비즈니스 모델에 사로잡혀 있는 한국 금융기업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인사제도, 디지털화, 글로벌 시장으로의 진출 등의 현안에 대한 선언적이고 장기적인 로드맵도 중요하지만 보다 빠르고 현실적인 대안으로 변화를 보다 가속화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혁신의 주체는 금융기업 스스로이어야 한다. 금융기업 전반의 변화와 혁신이 더딘 것은 정부정책과 규제의 탓이 아니라 어쩌면 금융기업 스스로의 노력이 부족할 수도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불과 얼마전까지만 해도 우리는 GE를 세계적인 비즈니스의 성공적인 모델로 삼아왔다. 물론 지금의 GE는 예전의 GE만큼 경쟁력 있는 글로벌기업으로 말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특정한 회사의 단기적 성공사례를 보고 무작정 이를 벤치마킹 하는 것은 매우 위험할 수도 있다. 하지만 현재의 소비자들은 넷플릭스의 전략에 적극적으로 반응하고 있음을 보면 아직은 미흡한 금융산업의 변화와 혁신을 위해 한번쯤 주목해 볼 만한 사례임에는 틀림이 없다.
박도규 SC제일은행 전 부행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