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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 추념사 논란 김원봉 대체 누구?…월북 고위직 지낸 항일투쟁가→1958년 숙청
뉴스종합| 2019-06-07 08:30
약산 김원봉. [연합]

[헤럴드경제=이운자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6일 열린 현충일 추념식에서 항일 무장독립투쟁가 약산 김원봉을 언급한 발언을 두고 일부 야권에서 반발하고 있다. 이에 누리꾼들의 궁금증이 쏠리면서 7일 오전 주요 포털 실검 키워드로 김원봉의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

이날 문 대통령의 발언을 놓고 청와대는 좌우 이념을 극복한 애국의 중요성을 강조한 발언이라는 설명을 내놨다. 그러나 자유한국당 등 야권에서는 김원봉이 해방 이후 월북해 북한 고위직을 지낸 사회주의 독립운동가라는 점에서 이날 문 대통령의 발언은 부적절했다는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영화 암살과 밀정에서 조승우와 이병헌이 연기했던 인물 정도로 당시 백범 김구 선생보다도 현상금이 많았던 것으로 알려진 김원봉은 1898년 경남 밀양의 부농 아들로 태어났다.

1918년 중국 난징의 진링 대학 영어과에 입학한 김원봉은 이듬해인 1919년 의열단을 조직해 국내 일제 수탈 기관 파괴와 요인암살 등 무정부주의 투쟁을 벌였다. 광복군에 합류한 뒤로는 1942년 광복군 부사령관에 취임했으며 1944년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국무위원 및 군무부장도 지냈다.

해방 후인 1948년 남북협상 때 월북을 하면서 그 이후로는 본격적인 사회주의 정치인으로서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김원봉은 그해 8월 북한 최고인민회의 제1기 대의원이 됐고 같은 해 9월 북한 초대 내각의 국가검열상에 올랐다.

6·25 전쟁 시기에는 군사위원회 평북도 전권대표로 활동하다가 1952년 5월에는 국가검열상에서 로동상으로 임명되기도 했다. 특히 이 과정에서 조국해방전쟁(6·25 전쟁)에서 공훈을 세웠다는 이유로 북한 정부로부터 훈장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로도 노동상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 등 북한 정권에서 고위직을 지냈지만, 1958년 김일성의 옌안파 제거 때 숙청됐다.

김원봉의 이러한 북한 행적 탓에 그동안 보훈처의 독립유공자 서훈 대상에서 제외됐다. 올해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정부가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를 대상으로 서훈 확대를 시도하면서 보수진영이 격하게 반발하고 있다.

사실 문 대통령의 김원봉 언급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015년 문 대통령은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시절 8·18 광복절을 맞아 페이스북에 “광복 70주년을 맞아 약산 김원봉 선생에게 마음속으로나마 최고급의 독립유공자 훈장을 달아 드리고 술 한 잔을 바치고 싶다”며 그동안 독립유공자 서훈에서 제외된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운동가들을 재평가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yiha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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