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고유정 사건] ‘시신없는 살인사건’ 대법원 판례 보니…정황증거 따라 유무죄 엇갈려
뉴스종합| 2019-06-11 08:21
-피의자가 범행 부인하고 정황증거 없다면 “사망사실 증명 우선” 무죄 선고 
-반대로 자백하고 범행도구 발견되는 등 정황증거 있을 땐 살인죄 확정짓기도
-2008년에도 피해자 시신 발견되지 않았지만 CCTV화면 근거로 징역 18년 확정 

[연합]

[헤럴드경제=좌영길 기자] 제주에서 전 남편을 살해한 혐의로 구속된 고유정 사건이 이른바 ‘시신 없는 살인사건’이 될 가능성이 커졌다. 살인사건에서 피해자의 사체는 가장 중요한 증거물인데, 그동안 대법원 판례를 보면 시신이 발견되지 않은 경우에도 피의자 진술과 정황증거로도 살인 혐의를 확정지은 전례가 있다.

11일 알려진 경찰 수사 내용을 종합하면 고유정이 범행에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흉기는 청주시 자택에서 발견된 것으로 알려졌다. 범행 이틀 뒤인 지난달 27일에는 피해자의 휴대전화로 자신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 자신의 알리바이를 뒷받침할 정황을 꾸민 것으로 조사됐다. 이 전화기는 고유정의 차량에서 나왔다. 피해자의 사체는 발견되지 않았다. 다만 고유정이 지난달 28일 완도행 여객선에서 봉투에 담긴 물체를 바다에 버리는 장면이 폐쇄회로(CC)TV영상에 담겼다.

대법원 판례상 정황증거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사체가 없는 경우 사망을 단정짓지 못한다. 피의자가 살해 사실을 부인하면 살인죄도 성립되기 어렵다.
대법원은 2008년 3월 동거생활을 반대하던 동거녀의 언니를 감금하고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50대 남성 한모 씨에 대한 상고심에서 사실상 무죄 취지로 “사건을 다시 심리하라”고 판결했다. 당시 재판부는 “시체가 발견되지 않은 상황에서 범행 전체를 부인하는 피고인에게 살인죄를 인정하기 위해서는 피해자의 사망사실이 추가적·선결적으로 증명돼야 한다”고 밝혔다. 2010년 회사 동료를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한 혐의로 기소된 30대 방글라데시인 사건에서도 피해자의 시신이 발견되지 않아 무죄가 확정됐다. 이 사건 1,2심 재판부는 “피해자가 사망에 이를 정도로 피를 흘렸다는 점을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고, 피해자의 옷과 가방이 없어진 점 등을 고려할 때 누군가에게 납치됐을 가능성 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고유정 사건은 살해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바다에 무언가를 버리는 장면이 찍힌 점도 유력한 정황증거가 될 수 있다. 대법원은 피의자가 자백하고, 진술 내용이 객관적 정황과 부합하면 시신이 발견되지 않아도 살인죄를 인정하기도 한다.

가장 유사한 사례는 2008년 아내를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한 혐의로 기소된 남성에게 징역 18년을 확정한 사건이다. 당시 부부가 살던 아파트에 설치된 CCTV에는 피해자가 실종 당일 집에 들어가는 모습이 찍혔고, 이틀 뒤 새벽에는 피의자가 집에서 쓰레기 봉투 5개를 들고나와 승용차에 싣고 어딘가로 가는 모습이 찍히는 등 정황증거가 인정됐다. 대법원은 2012년에도 회사 사장을 살해하고 암매장한 혐의로 기소된 2명에게 징역 15년형을 확정했다. 사체가 발견되지 않았지만 재판부는 “공소사실이 진실하다는 확신을 가지게 할 정도의 심증은 반드시 직접증거에 의해야 하는 것은 아니고, 경험칙과 논리법칙에 위반되지 않는 한 간접증거에 의해서도 형성될 수 있다”고 판결했다. 이 사건 1심은 국민참여재판으로 열렸고, 배심원단은 사체가 없는 상황에서도 만장일치로 유죄 의견을 냈다.

다만 고유정에게 살인혐의가 인정되더라도 ‘우발적 살인’을 주장하고 있다는 점이 형량에 영향을 줄 가능성은 있다. 죽은 자는 말이 없기 때문이다. 이 경우에도 고유정이 표백제를 미리 구입하는 등 범행 도구를 미리 준비했거나, 피해자에게 수면제를 먹였다는 식의 사전계획 증거가 나온다면 ‘우발적 범행’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jyg97@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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